얼마전 KBS 드라마 「태조 왕건」1백회 방영 축하연이 열렸던 서울 63빌딩 회의장.
 헤드 테이블에는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그리고 국회의원등 다수의 정치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참석자중 모씨가 왕건 대망론을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려는 바람에 자축연이 딱딱한 분위기로 변하자 한 연기인은 대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국민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나라당 이총재와 민주당 김대표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치 않았으나 공교롭게도 양당은 서로 상대방을 드라마 속의 인물 「아지태」로 비유했다.
 민국당도 질세라 『나(아지태)에 비유된 사람은 나같지 않고 나를 비유한 쪽은 왕건 같지 않다』며 공방전을 한몫 거들었다.
 김대표는 회의 주재석상에서『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빠를 왜 아지태로 부르느냐는 막내딸의 말에 부끄러웠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다음날 TV와 조간에 등장한 자축연 참석자 면면을 보고 국민들은 이들의 꼴불견을 독자투고로 꾸짖었다.
 태조 왕건이 지난해 8월부터 인기드라마 1위에 45%의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상종가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왕건이 수개월째 부동의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비결은 무엇일까.
 당연히 드라마인 만큼 궁예역을 맡은 김영철의 걸출한 연기가 돋보였다.
 이와 관련 작가는 등장 인물들간의 갈등으로 내용을 풀어갈 수밖에 없는데 화합과 덕치를 표방한 왕건을 전면에 세워서는 극에 재미를 불어넣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륵을 자처하며 독특한 카리스마 연기를 펼친 그의 연기 덕분에 드라마가 인기를 더하자 작가는 궁예의 최후를 미루며 예정된 방송횟수를 늘렸다.
 궁예가 쓰는 관심법(觀心法)과 안대까지도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심지어는 김대중대통령도 「나는 모든 사람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며 묘한 발언을 하자 야당은「궁예가 관심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빚대어 되받아 쳤다.
 같은 드라마를 시청해도 보는 이에 따라 즐기는 심리와 만족은 제각각 일수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태조왕건이 주는 대리만족과 이를 통한 카타르시스가 그중 가장 크다.
 정치권과 대권주자에 식상한 탓이다.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美學)을 구가하며 신선하게 다가오는 덕장 왕건을 바라보며 현실정치의 답답함이 오버랩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일게다.
 그뿐인가.
 미복차림으로 궁궐을 빠져 나왔다가 백성들로부터 미치광이 미륵소리를 듣는 궁예를 보면서 지하철에서 망신당한 야당총재의 모습도 떠오른다.
 이 역시 정치적 이상은 높이 갖되 현실파악에 대한 눈높이는 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교훈인 셈이다.
 지금 이땅에는 왕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진정한 미륵 세계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실업자가 되어 지하철역을 헤매면서도 종간 책사와 간신 아지태와 같은 인의 장막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왕건대망론은 위민정치를 펼칠때 추대하는 분위기속에서 자연스레 우러 나는 법이다.
 제잘난 맛에 왕건과 동격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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