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자연적인 경계인 산맥과 강에 따라 다소간 차이를 보인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는 그 제작 수법에 있어 한강 문화권과 낙동강 문화권이 약간 다르다.
 고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서울 암사동식 빗살 토기는 토기의 표면에 새겨진 빗살 무늬가 대체로 가는 세선문(細線文)인데 비해 부산 동삼동식 빗살 토기는 무늬가 매우 굵은 태선문(太線文)이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또한 북방식(탁자식), 남방식(바둑판식), 구덩식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방에 따른 문화의 차이는 실로 오래전서 부터 있어온 일이다.
 충북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다 한강, 금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상이보다는 융합 양상을 빚는 특성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남한강, 금강 가릴 것 없이 서울 암사동식 토기와 부산 동삼동식 토기가 함께 출토되고 고인돌도 여러 양식이 혼재한다.
 이를테면 북방의 문화와 남방의 문화가 만나는 어떤 접합점 역할을 하고 있다. 청원 비중리 불상, 충주 봉황리 마애불 등에는 신라, 고구려의 문화가 혼재하며 백제 신봉동 고분 등지에서는 이른 백제시기의 문화가 상당수 남아 있다.

 산성의 구조도 그렇다. 대체로 신라 양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백제, 고구려의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결론적으로 충북지역내에서는 강을 경계로 한 뚜렷한 문화의 차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금강 유역과 남한강 유역의 출토 유물이 대동소이하다. 청동기시대의 붉은 간토기(紅陶)는 제천 황석리출토품이 눈길을 끄는데 그후 금강 유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간토기가 나왔다.

 백두대간의 갈비뼈에 해당하는 소백산맥에는 금강, 한강 또는 금강, 한강, 낙동강의 분수령이 여러곳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속리산의 천황봉의 삼파수(三派水)다. 이곳에 빗물이 떨어지면 금강, 한강, 낙동강으로 제각기 흘러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인 한금령도 금강과 남한강의 분기점이다. 이 작은 고갯마루에서 사람과 차(車)들이 쉬어가는데 고개를 넘어 가도 기후의 변화나 생활 문화의 변모가 감지되지 않는다.

 괴산과 증평은 인근지역임에도 일대를 흐르는 강물이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든다. 괴산의 괴강은 배여울(梨灘), 목도를 지나 한강 지류인 달래강으로 흘러 들며 증평의 보강천은 금강으로 유입된다.
 같은 지역내에서도 이처럼 강물의 흐름이 다른 곳은 비단 괴산, 증평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강물의 흐름이 다르다 하여 두 지역이 화합치 못한다는 신택리지(新擇里志)적 해석은 신빙성이 없다. 이는 호사가의 말에 불과하므로 이상한 풍수설을 괴산, 증평간 지역발전과 연계시킬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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