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창근 문화기획자·문화칼럼니스트

의정부음악극축제 자료 사진 / 뉴시스
의정부음악극축제 자료 사진 / 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지역축제는 2018년 현재 매년 893개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종합적인 축제로서의 성격에 해당되는 축제만 집계된 통계이며, 일반행사, 마을축제, 순수예술행사와 단순 문화행사 등은 제외된 수치다. 그야말로 한국은 '축제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제는 고대 제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계절제는 모두 제천의식에서 유래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이 며칠 동안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부르며 일체감을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축제였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노래와 춤으로 일의 능률을 높이고 피로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타난 축제는 각각의 문화와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적 산물이다. 인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로서의 근본은 동서양, 국가를 불문하고 같다.

축제란 주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민 자신이 취하는 것이며,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재생산을 위한 휴식으로서 인간의 활동이다. 이를 실천하고 있는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음악극'이라는 장르로 개최되는 국내 유일의 축제이다. 올해는 "Liminality :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동양과 서양, 지역과 주민, 공연자와 관객의 경계를 넘어 통섭형의 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공연평론가인 현수정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는 "현재 음악극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대체로는 음악이 비중 있게 들어간 모든 장르의 공연들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것이며, 오히려 음악극을 범주화시키는 것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이번 축제기간에 열린 심포지엄에서 밝혔다. 왜냐하면 음악극은 다원적인 성격을 지닌 열린 장르이기 때문이다.

2002년 시작되어 올해 17회를 맞은 의정부음악극축제는 해마다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는다. 지난 11일에 개막하여 20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과 의정부시청 앞 광장에서 영국, 프랑스, 폴란드, 스페인 등 5개국 50여 편 작품이 열흘간 총 80여 회 무대에서 관객과 만난다. 의정부음악극축제의 예산은 10억 원이다. 국제적인 공연예술축제를 치르기에는 적은 규모다. 하지만 국내외의 예술가는 물론 많은 축제기획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로 거듭났다. 2014년 제13회부터 현재까지 총감독을 맡고 있는 이 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향후 미국과 유럽의 아티스트, 프로모터, 프로듀서를 비롯한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아트마켓의 역할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이창근 문화기획자·문화칼럼니스트

의정부음악극축제의 킬러콘텐츠는 역시 개막작이었던 영국의 야외퍼포먼스 '451'이었다. 화씨 451도는 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이자, 책을 불태우던 이들에게 인간다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숫자라고 한다. 소설 '화씨 451도'에서 영감을 받아 책이 금지돼 책을 불태우는 일이 소방관들의 임무가 된 미래를 그린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지>에 10대 야외공연으로 선정됐던 이 공연이 11일과 12일 국내 초연되었다. 필자가 참관했던 12일은 비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주최 측이 나눠준 우의를 입고 입체음향과 함께 불타는 장면을 비롯한 특수효과를 신비롭게 감상하는 아이들, 퍼포머가 관객에게 질문을 하면 관객의 화답에 따라 공연이 진행되는 상호작용이 담긴 공연이었다. 필자 또한 이것이 진정한 관객 참여형의 공연이고, 축제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장관은 지난 1월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화의 창의성, 상상력을 키워 사회와 세계로 확산'해 나간다는 방향을 세우고, '사람이 있는 문화,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축제가 발생된 고대 제천의식에서 참여자 모두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불렀던 축제의 유래처럼 축제에는 사람과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1994년 지방자치제가 출범하며 급격하게 늘어나 현재 천여 개에 달하는 한국의 지역축제는 관객,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콘텐츠의 기획과 운영에서도 상호작용적 기법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통섭의 축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창의와 소통이 넘치는 세상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