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진 세종교육감 당선인
최교진 세종교육감 당선인

[중부매일 홍종윤 기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당선인은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승리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일군 세종 교육가족의 승리"라고 밝혔다.

최 당선인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로 가는 더 큰 길을 내라는 시민 여러분의 명령"이라며 "시민 여러분의 뜻에 따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 세종답게 아이 키우는 일이 행복하도록 하겠다며 우리 아이들을 미래가 원하는 인재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최 당선인은 "세종에서 대한민국 교육의 새 길을 열어 세종교육을 세계가 본받고 싶은 교육으로 만들겠다며 모든 일은 교육가족, 시민 여러분과 힘을 모아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생 배움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하여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열겠다는 것이다.

최 당선인은 충남 보령 미산 출신으로 초등학교까지 대천에서 지냈으며, 서울로 유학해 중·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내 사립대 갈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공주사범대에 진학, 자신처럼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대학 시절 유신체제 부당함을 알리는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다 붙잡혀 공주사대 설립 이래 최초로 제적된 학생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1978년 서해안의 안면도에 있었던 누동학원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정식교사가 아닌 대학생 신분의 야학 교사로 지냈다.

1981년 10년이 지난 늦은 졸업을 하고 첫 발령이 난 곳이 충남 보령시 대천여자중학교였으며, 1983년 이오덕선생님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창립하여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확산시키는데 노력해 왔다.

교직생활은 순탄치 않아 참교육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1984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첫번째 해직을 당했으며, 해직 후 민주화 운동에 나서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있던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됐다.

1988년 복직되어 강경여중에 부임하였으나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하여 다시 해직됐으며, 1992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참교육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해직 이후 10년만인 1998년 9월말 충남 부여에 있는 세도중학교로 복직하였으나 2003년 전교조와 관련해 다시 해직됐으며, 전교조 충남지부장을 지내는 등 독재정권과 싸우고 학생의 인권을 지켜주는 검투사가 되어 3번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교육운동을 넘어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지역 운동 등 재야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에 토지공사 감사로 임명되어 세종시 건설 계획에 참여해 2010년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공동대표 등을 맡아 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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