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30년 만에 귀향하면서 제일 먼저 준비한 연장이 호미였다. 호미로 텃밭을 가꾸고 싶었고, 화단도 꾸미며 그림 같은 집을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얼었던 대지가 몸을 풀기 시작하자 꽃씨를 뿌렸고 봄비를 맞으며 고추·토마토·가지·오이·옥수수 등 갖가지 모종을 심었다. 이만하면 여름 햇살 가득한 날 꽃들이 만개하고 싱싱한 열매 가득하리라, 시골 향기 물씬 풍길 것이니 도시의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도 열고 수확한 먹거리를 나눠주면 좋겠다는 낭만 가득한 상상을 했다. 이곳이 세종대왕께서 행궁을 짓고 요양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실천했던 곳임을 웅변하고 싶었고, 내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세종대왕의 후손이라며 으스대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아 내 꿈이 근본 없고 허황된 것임을 확인했다. 농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땀 흘린 흔적 없이 알곡진 수확만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리면 알아서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을 넘어 무례하기까지 했다.

화단에는 이런저런 새싹이 기지개를 펴며 자라는가 싶었지만 어느 것이 내가 뿌린 씨앗의 싹이고, 어느 것이 잡초인지 알 수 없었다. 뒷밭에도 잡풀로 무성했다. 거름을 주지 않았으니 모종이 자라는 것은 더디고 이내 잡초가 모종을 뒤덮었다. 난감했다. 잡초는 시시각각 솟아오르고 있었다. 올 농사 망쳤다며 갈아엎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할 수 없이 뒤늦은 후회를 하며 잡초를 뽑았지만 올 해 농사는 망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겹게 살아남은 것들은 불모의 땅에 꽃을 피우고 열매가 하나 둘 맺기 시작했다. 토마토와 오이 몇 개를 씹으며 내내 미안했다. 무슨 자격으로 이것들을 먹는 것인지 눈물겹다. 문득 문화(Culture)의 어원이' 경작' 또는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유래했음을 상기했다.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가꾸며 수확의 그 순간까지 땀과 지혜와 열정의 산물이 농업이고 문화가 아니던가. 거저먹으려는 얄팍한 수작이 되우 부끄러웠다.

농민들에게 농사는 경전이고 종교이며 운명이다.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흙은 본능적으로 기지개를 편다. 농부들은 하루 종일 밭에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며 진한 땀방울을 흘린다. 토질과 기온의 상태에 따라 경작의 형식과 기술이 다르다. 배우고 또 배우며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하늘과 땅의 기운, 그리고 농부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값진 결실을 맺는다.

초정리 뜨락에 앉아서 오후의 창을 열었다. 허기처럼 옛 시절의 이야기가 스쳐갔다. 탕마당에서 아이들과 소꿉장난하며 뛰어놀고,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 천렵을 하며, 산뽕나무 숲에서 입술 붉게 빛나도록 오디를 따먹었던 날이 언제였던가. 석양이 붉게 빛나던 그날, 쇠꼴을 베다말고 버들피리 부르며 꿈을 노래했던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굴뚝의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면 아랫집 윗집으로 마실 다니던 악동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가슴 시리고 아프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시골 풍경은 헐겁고 느슨하다. 뒷산에서 들려오던 새들도 제 집으로 갔는지 고요하다. 승어골은 깊고 푸르지만 사납거나 강력하지 않다.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탕마당에는 행궁을 짓느라 부산하다. 약수로 목을 축이는 사람, 달달한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풍경이 얼핏 스쳐간다. 오달지고 마뜩하다. 장독대 옆에 심은 산초나무가 새 순을 틔우고 있다.

아카시아 꽃이 여인의 향기를 몰고 오더니 늙은 총각 몸 풀 듯 밤꽃 향기가 바람의 현을 타고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오기로 한 사람은 소식조차 없고 그 자리에 망초꽃이 무성하니 내 가슴이 쿵쿵거린다. 호미는 처마 밑에서 제 갈피 못 찾고 있다. 호미를 볼 때마다 "너 뭐하는 놈이니?"라며 심하게 꾸짖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장마가 왔으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것이고 화단과 뒷밭의 잡초는 더욱 억세질 것이다. 올 한 해도 건들마처럼 설렁설렁 지나가버릴까 무섭다. 내 마음의 정원부터 예쁘게 가꿀 일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