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창근 문화기획자겸 문화칼럼니스트·예술경영학박사

판소리명창명고 대회. / 뉴시스
판소리명창명고 대회. / 뉴시스

올해 7월 8일은 대한민국의 국창(國唱)이었던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이 타계한 지 15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 매년 7월 8일에 즈음하여 박동진 명창이 태어난 충남 공주에서 박동진판소리전수관 주관으로 추모음악회, 명창ㆍ명고대회, 창작판소리 경연 등 다채로운 추모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故 박동진 명창은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전통문화를 알린 국악전도사였다. 1992년 '쿵 딱, 제비 몰러 나간다~'로 시작되는 의약품 CF에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한 광고카피는 90년대를 거친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박 명창은 '토막소리' 위주이던 판소리계에 완창 판소리의 새바람을 일으킨 판소리계 대들보이자 국악 보급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 국악계 거목으로 꼽힌다. 박 명창은 일반적으로 판소리계에서 분류되는 소리의 계보를 갖고 있지 않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는 스승으로부터 전수하여 제자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형태의 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창조적 판소리 개척자임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창조적 정신은 1968년 국내 최초로 6시간에 걸친 판소리 완창 공연을 시도해냈다는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후 판소리 완창 공연은 현재까지 귀명창과 국악애호가들이 찾는 국립극장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의 완창 판소리는 당시 잊혀가던 국악을 새롭게 부흥시키고 수많은 명창이 완창 판소리에 도전하는 시금석이 되었다고 그를 주변에서 지켜본 동료 국악인과 언론인은 회고하였다. 1973년 58세에 '적벽가'로 인간문화재에 인정된 박 명창은 기교에 능한 소리를 비롯하여 창조적인 아니리(대사)와 극적인 발림(연기)으로 인기몰이를 지속했다. 그의 공연특징은 서민적 정서를 단연 꼽는다. 비속한 언어, 음담패설, 욕설까지 자연스레 구사해 서민적 생기를 무대에 불어넣었고 이를 통해 국악의 대중화를 이뤘던 것이다.

박 선생이 다른 명창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만의 재창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여러 스승으로부터 조금씩 배워 익힌 소리를 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로 재창조해 낸 독창적인 소리꾼이다. 박 선생의 소리는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만의 독창성을 갖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지향한 훌륭한 명창이다. 요즘 많은 예술가가 창조적 융합을 통한 작품 제작을 화두로 창작활동을 한다. 박 선생은 1960년대 당시 이른바 시대를 앞서간 '크리에이터'였던 것이다.

박 선생은 1997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충남 공주로 내려가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홀연히 하늘로 떠나갔다. 별세하기 전까지도 중앙과 지방 여러 무대에서 판소리를 선보이며,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현재 공주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서는 박 선생의 예술업적과 유품 전시, 판소리 강습,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필자 또한 공주에 가는 경우에 늘 방문하여 선생의 예술사를 통해 창작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창근 문화기획자·문화칼럼니스트<br>
이창근 문화기획자·문화칼럼니스트

박동진 명창의 예술사와 함께 충남 공주에는 국악자원이 풍부하다. 충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공주탄천장승제, 공주봉현리상여소리, 공주선학리지게놀이, 공주의당집터다지기 등이 있는데, 이런 무형유산 속에 소리와 연희 등 전통공연예술적 요소가 담겨있다. 민간예술단체는 공주아리랑보존회, 백제기악전승보존회 등이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주생명과학고(옛 공주농고)의 농악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등 웃다리농악 공주풍장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이밖에도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이 평생 수집한 민속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공주민속극박물관이 있으며, 공립예술단체로 공주시충남연정국악원이 1997년 설립되어 정기공연과 국악교육, 강습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국악 진흥은 국립국악원이 서울 서초동 본원을 중심으로 권역별 지방국악원을 설치하여 ‚국악 보급을 하고 있다. 호남지역에는 전북 남원에 국립민속국악원, 전남 진도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며, 영남지역에는 부산에 국립부산국악원이 2008년에 개원하였다. 그러나 충청지역에는 지방국악원이 아직까지 부재한 실정이다. 충청도 소리인 중고제(中高制)의 본향 충남 공주에 지방국악원 설립이 시급한 이유이다. 지난 5월 16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발표한 '문화비전 2030'의 세부계획에 구체화되어야 할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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