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세계 4강에 진입하여 온 국민이 환호하고 열광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광화문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을 '붉은 악마'의 물결로 뒤덮은 이 쾌거는 한국축구의 도약이자 시민사회의 응집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한국이 세계 문화 4강이었고, 청주도 한국 4강, 세계 4강이었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일 월드컵이 벌이지기 한 해 전인 2001년 6월 27~29일, 청주에서는 제5차 MOW(유네스코 세계의 기억사업)국제자문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자리는 세계기록유산을 확정하는 자리다. 이때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22개국서 43점이 신청되었는데 이중에서 절반은 탈락하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이 '승정원일기' '구텐베르그 성경'등과 함께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확정된 것이다.(총 11개국 21점)
 정말로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도는 순간이었음에도 청주시민들과 한국 국민들은 그 짜릿한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보다 2년전, 스위스에서 열렸던 같은 회의에서 직지 하권을 보유한 프랑스측의 비협조로 낙방을 했던 기억이 있기에 감동의 폭은 두배로 작용하였다.
 한국에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미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해례본'에 이어 '직지'와 '승정원일기'가 등재되었으니 청주에서 찍은 '직지'는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4강의 신화를 이룩했다.
 현재 유네스코에는 33개국의 69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이를 나라별로 살펴보면 러시아가 7건으로 가장 많고 독일, 오스트리아가 5건이며 한국이 덴마크와 더불어 4건으로 세계문화 4강을 기록하고 있다. 이중의 하나가 바로 '직지'이니 한국 4강이며 세계 4강인 것이다.
 물론 총체적 문화역량에 있어서는 한국과 청주가 세계 문화 4강이 될 턱이 없다. 4강의 신화는 오로지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종목에 국한한다. 우리의 선조는 이처럼 세계 4강의 문화를 이룩하였는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잇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매우 궁색한 편이지만 인터넷, 반도체 분야에서는 분명 세계 4강안에 들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금속활자의 발상지는 곧 정보문화의 발상지를 의미한다. 혼자만 알던 정보를 금속활자를 통해 대량 전달(매스 커뮤미케이션)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그 창조적 유전인자가 재현되어 오늘날 우리나라가 정보문화의 강국이 된 것이다.
 그 영광을 재현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자는 것이 '2003 청주직지축제'의 취지다. 구텐베르크의 고장 마인쯔에서는 1백여년전부터 축제를 통해 금속활자의 발명을 기리고 있다. 독일의 인쇄공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구텐베르크의 초상화가 나붙어 있다.
 우리나라 어떤 출판사에, 어떤 인쇄공장에 직지 인쇄물의 주인공인 백운화상이나 석찬, 달담의 초상화나 직지 표지, 간기가 붙어 있는가. 문화의 제국주의도 경계할만한 일이지만 자기문화를 별것 아니라고 폄하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