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썰렁하다 못해 우울한 지경이다. 경기가 바닥이고 보니 소비자의 지갑이 여간해서 열리지 않는다. 추석 대목도 실종되었다. 유명 백화점, 할인점은 물론 재래시장에는 찬 바람이 인다.
 게다가 지리한 비로 벼나 과일 등 농산물이 제대로 못자라 농심마져 어두워지고 있다. 황금물결로 뒤덮히던 가을 들녘이 을씨년스럽다. 설익은 농작물이 연일 비를 맞으며 결실을 보류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칠레 농산물 협상으로 활기를 잃고 있는 판인데 무심한 하늘에선 자꾸만 비를 뿌려댄다. 오곡백과가 무륵익고 이웃과 정을 나누던 추석 명절의 정취가 사라지고 있다.
 양로원, 고아원 등에도 온정의 손길이 뚝 끊겼다. 예년 같으면 위문행렬이 장사진을 치고 위문품이 넘쳐났는데 이제 그런 모습도 꿈인양 찾아볼 길이 없다. 더구나 미인가 시설에는 지원금도 없고 위문행렬도 없다.
 사회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인데 나 살기가 바쁘다고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척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나눔과 베품의 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법이다.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날이 갈수록 팽배하고 있다.
 소수만 잘 사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여럿이 잘 사는, 이른바 복지국가가 우리의 지향점인데 불행히도 외환위기 여파로 복지사회의 기둥이 되어야 할 중산층이 자꾸 붕괴되고 있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내 쌀독이 비어 있으면 이웃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중산층은 서민으로 전락하고 그대신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최소한 생존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정부의 몫인데 그 해법은 늘 답답하다.
 노숙자, 실직자, 결식아동들에게는 추석이 반가울리 없다. 귀향에 필요한 차비 마련도 여의치 않은 판에 무슨 면목으로 가족과 조상을 대하겠는가. 상당수 중산층의 주부조차도 추석이 싫다는 반응이다.
 이에비해 청주공항을 통해서 추석연휴를 즐기려는 여행객의 티켓은 동이 났다. 성묘는 미리하고 황금 연휴를 중국, 제주도 등지에서 여유롭게 보낼 계획을 짜고 있다.
 한쪽에서는 추석빔은 커녕 떡방아 소리도 못내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나만 즐기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유에 나서고 있으니 한가위를 맞는 사회의 이같은 양면성을 어떻게 봐야 할지 실로 난감하다.
 가난은 국가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지만 명절은 가난한 자나 부자에게 공평히 다가온다. 부촌에도 달이 뜨고 달동네에도 달이 뜬다. 추석은 몇몇의 명절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명절이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은 잊지 말아야 겠다.
 한가위 보름달이 둥글듯이 인간관계도 둥글게 형성돼야 그 사회가 건강하고 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차례상은 맞춤으로 대신하고 벌초는 위탁하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추석 명절에 있어온 '정 나누기'는 누구에게 대신 맡길 성질이 아니다. '추석 수호천사'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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