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 한번 가 보아라.
 예년 같으면 추석을 앞둔 지금쯤은 누런 황금 물결이 넘실대야 할 우리의 들녘이다. 그러나 요즘의 들녘엔 추수의 풍요로운 기쁨은 간 곳이 없고, 을씨년 스러움과 허망함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올들어 이상기후로 인한 잦은 국지성 호우와 함께 9주일째 연이어 내리는 주말의 비로 인해 수확기를 맞은 빨간고추는 무름병으로 썩고 있으며 쨍쨍 내려쬐는 햇볕을 받지 못한 벼이삭은 고개숙인 쭉정이가 되어 썩고 있으니 어찌 들녘이 풍요로울수 있겠는가.
 어디 고추나 벼 뿐인가. 대부분의 과일과 농작물들이 햇볕을 받지 못하고 습한 날씨속에서 제대로 익지 못해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병충해로 인해 작황도 좋지 않다. 땅만 그런가. 요즘 우리의 바다는 적조에 시달리고 있다. 폐사되는 어장에서 어민들의 억장도 무너지고 있다.
 그래도 농부들은 속 타는 농심을 비옷으로 가리고 내탓이려니 하며 고추 한개라도 더 거두고자 고추이랑 속에서 주름진 늙은 이마에 땀방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 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는데.
 올들어 이제까지 우리의 들녘을 이처럼 을씨년 스럽고 허망하게 만들고 있는 먹구름과 잦은 비는 우리의 정치권이나 정부에도 농사에 미친 악영향 보다도 더 크게 몰아쳐 서민들의 가슴을 짖누르며 희망과 비전을 잃게 하고 있다.
 질척거리는 정치판 속에서 선량이라는 사람들은 본분에 열중하기 보다는 내편으로 와라, 우리편이 좋다며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그 와중에 여당은 여당이기를 포기하고 민생을 외면한채 주먹질로 집권당 쪼개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야당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국정의 진정한 동반자이기 보다는 다수의 힘으로 국정을 옭아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정부는 어떠한가.
 서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는 여론속에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과 만족보다는 불신과 불만과 불안하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빈 곳간에서 인심이 날 수 없듯, 불과 몇천만원의 카드빚에 온가족이 목숨을 끊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많은 서민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다 못해 이제는 텅비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불거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건의안은 한냉한 국정의 기압골을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9월 3일은 대의민주주의를 남용한 치욕적인 날로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것" 이라며 정치권에 직격탄을 쏜 당사자나 해임건의안 처리는 "정부가 불편을 겪고 국민이 불안해지고 하면 그때 가서 결단을 내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헌법의 아들인 대통령이 헌법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는 못난이의 오기"라고 일격을 가한 후 '출생 또는 사망을 신고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출생과 사망이 사실로 결정되듯 김장관은 헌법에 의해 이미 그 수명이 끝났다'고 선고했다.
 거두절미 하고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힘겨루기에 신물이 났다. 노무현 대통령도 '내사람 감싸기'보다는 '읍참마속'의 결단을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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