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는 지난 2000년 특수학교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학교에서 전직하여 장애 아이들과 생활해야 하므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발령 사실을 확인하고 사전 답사겸 학교에 들르자 교장선생님께서 환영한다 하시며 재택반에 있던 구원이가 마침 4학년부터 학교에 나오기로 하여 내게 담임을 맡기신다는 것이다.

당시 구원이는 자신의 장애와 흡사한 일본의 ‘오토다케’를 만나고 오는 등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나도 매스컴을 통하여 구원이를 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으나 막상 담임을 한다하니 잘 도울 수 있을까 염려가 많았다.

드디어 3월 2일, 멀리 자모원에서 조금 늦게 등교할 구원이를 맞을 준비를 하는데 어느 새 교실 문이 열리며 ‘안녕하세요’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네가 구원이니? 만나서 반가워......”

뜻밖에 아주 자연스럽게 소년과 첫 대면을 한 것은 신(神)의 도우심이었을까! 구원이는 정말 팔과 다리가 없이 몸통만 휠체어에 앉혀진 채 띠로 두르고 있었다. 도우미로 오신 분이 바로 옷을 갈아 입히고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에 붓을 물고 해바라기를 그리고,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컴퓨터를 하고, 입과 턱으로 책장을 넘기며 많은 책을 읽어 냈다. 나는 종종 구원이가 장애를 지닌 사실을 잊은 적도 있었다.

내가 그해 담임한 아이 중에 구원이 못지않은 장애를 지닌 소년이 또 있었는데 사지마비에 말도 할 수 없는 J군이었다. 자신의 발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고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나 소년은 사리가 분명했고 인정이 많았다. 과자를 내게 먼저 건네주고 급우들과 나누어 먹는 등, J군과의 에피소드는 이젠 추억이다. 하루는 J가 늘 가져다니던 소변통을 집에 두고 와 급한 대로 우유곽에 소변을 받았는데 이 애, 저 애 돌보느라 정신없다보니 내가 마시다 남은 우유인지 알고 J의 오줌을 마신 것이다. 그 오줌은 그리 지리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약간 쓴 맛이 나는 것이었다. 내 평생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오줌을 마셔보기는 처음이었다.

구원이는 팔다리 없이 몸통에 의지하여 생활하니 안타깝게도 척추에 점차 무리가 되었는지 5학년 2학기에 서울 중앙병원에서 수술을 한 적도 있었다. 결국 구원이가 자모원에서 다시 중학과정을 공부해야 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느새 쏜살같이 5년이 지나갔고, 올해 일반학교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새 임지에서 종달새처럼 재잘거리고 나비처럼 자유로이 날며 뛰노는 아이들을 볼 때 본의 아니게 장애를 입고 태어난 그 곳의 아이들이 눈에 밟히며 가슴 저리다. 한편 지난 5년간 특수교사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그들의 장애를 덜어주고 진정한 사랑을 베풀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그들이 외적으로는 장애인이었으나 오히려 내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고 그 아이들을 낳고 돌보는 어머니가 얼마나 담대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나를 존경의 마음으로 되새기는 것이다.

특수학교에서의 나의 제자들처럼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일을 이룬 장애인이 너무도 많다. 생명의 등불을 밝혀드는 4월이 가기 전에 장애인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쩌면 내 장애를 대신 입고 태어난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나는 얼마나 너그러운가를 되돌아봄으로써 이름 없는 무지개 계절은 빛날 것이다.

끝으로 모든 장애인들과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글월을 함께 나누고 싶다.

“신은 당신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그 선물을 문제라는 포장지로 싸서 보낸다. 선물이 클수록 문제도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이제 당신은 달라져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 속에 감추어진 선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이 없는 선물은 없다.”

/청원옥포초등교사 박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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