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무심결에 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 밑에 “법의 날”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순간 “법의 날이라니? 이런 날도 다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생뚱맞은 기념일이다.

이 말에 많은 독자들은 “거 참 무식한 자로고”하며 비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법을 전공했고, 그것도 10 여 년 넘게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법’을 가르치며 ‘밥’을 먹고 있는 필자이지만, ‘법의 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는 고사하고, 언제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는지, 심지어는 몇일인지 조차 솔직히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법치주의국가의 국민으로서 무려 41년 동안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온 ‘법의 날’을 모른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일 것이고, 이는 법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에 찹찹함을 금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법치주의란 ‘법에 의한 통치’를 이념으로 하는 정치사상으로서, 근대국가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함께 가장 중시하는 핵심적인 국가의 기본원칙이며,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소중한 원리라는 것을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치주의나 법이 정말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무리 역설해도 냉소적인 분위가 지배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 가운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등 등, 법을 비하하는 일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기에다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보다 법을 잘 지키고 있고, 법보다는 권력이 우선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 사리를 가지고 법으로 해결하자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 인간적이지 못한 성품의 소유자로 몰아 부치는 경향이 강하다. 그야말로 법치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법불신풍조가 팽배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순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법을 동반자가 아니라, 가슴을 조이는 악마쯤으로 보고 있는 법불신풍조의 원인은 법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봉건시대를 거쳐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 독재권력의 지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법은 민초들의 편에 서기보다는 언제나 민초들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권력의 시녀를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루소가 법을 야유하던 말처럼 “법은 부정한 권력의 산물일 뿐이며, 따라서 가진 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못가진 자에게는 더 없이 고통스러운” 그런 존재였을 뿐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법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박약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법에 대한 의식이 흔들리면 필연적으로 준법정신이 결여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 가서는 해결 불가능한 사회문제로 표출된다는 점이다.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는 무질서, 도덕불감증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극한 갈등은 바로 준법정신의 결여가 원인이며, 그 밑바닥에는 법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난맥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법에 대한 거부감을 치유하고, 법치국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주장이 공허한 메아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이고, 특히 대통령 탄핵사건이후에 거리에서나 가정에서 자연스레 법률문제가 뜨거운 논쟁거리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정한 법치주의의 토대가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법이 필요한 것이고, 법대로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실정법운용도 생명을 ‘조이는 방식’에서 생명의 터전을 ‘베푸는 방식’으로 일대 전환해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현행법의 내용을 개혁하여 일반사람의 규범의식에 맞도록 조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에 관한 교육을 사회전체로 확대하여,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질서교육과 준법교육을 시행함으로써 국민모두가 ‘실정법’에 눈을 돌리고 이해할 수 있는 법교육체계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법의 날’ 아침에, 법대로 살면 모두가 마음 편해질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본다. 나아가 법 없이도 질서가 유지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 서원대 법학과 이헌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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