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웠던 겨울바람도 저만치 가고 옷깃을 여미게 하던 꽃샘추위도 지나 이제, 향기로운 꽃내음이 코끝을 감싸는 계절이다.

‘금수강산 대한민국’ 이라는 말에 어울리듯 산과 들은 파랗고 노랗고 붉은 꽃들의 향연을 이루며 신록의 계절로 향하고 있다.

산과 들을 찾기에도, 행사를 열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시간이다.

그러나 해마다 이 때를 즈음하여 서서히 고개를 들고 나타나는 부끄러운 관행이 있다. 정치인들과 각종 지역단체, 주민들 간에 관광, 야유회, 지역축제등 각종 행사를 이용해 행해지는 불법적인 금품·향응 제공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한 친목모임에서 입후보예정자 운동원의 알선으로 ○○지역으로 관광을 떠난다.

아침 일찍 관광버스에 오르자 아침을 거른 사람들을 위해 떡도 주고 음료수에 술과 안주 그리고 점심도 주어서 흥을 돋운다.

돌아오는 길에도 심심치 않게 자잘한 간식거리도 챙겨준다.

그렇게 호강(?)하는데 든 돈이 단돈 만원! 나머지는 입후보예정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채워진다. 입후보예정자가 직접 나와 인사를 하고 찍어달라고 하지 않더라도 ○○○가 다음 선거를 위해 내는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된다.

몇 해 전에 흔히 행해지던 일이지만 지금도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보기 어려운 봄철 관광행사를 이용한 정치인들의 불법 기부행위의 대표적인 예이다.

‘받는 것 따로 찍는 것 따로’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라도 받은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준 사람의 선전벽보에 눈길 한 번 더 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또한 불법 기부행위에 드는 비용은 선거결과의 왜곡뿐만 아니라 정경유착 및 부패의 구조화를 초래함으로써 국가경제에도 부담을 주게 된다.

2004년 3월 12일 개정된 선거법에서는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한시적으로 기부행위를 제한하던 개정 전 선거법과는 달리 정치인의 기부행위를 365일 상시 제한하고 있다. 또한 기부를 받은 자에게도 받은 가액의 50배(최고 5,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가 아직 멀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정치인에게 금품이나 음식물을 제공받는 경우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반대로 기부행위 위반사례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경우 최고 5,0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아직도 잘못된 관행과 구태의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권자들 가운데는 정치인에게 은근히 봉투를 바라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 봉투 속 돈의 주인이 당선된 후에는 그 금액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돈을 유권자의 주머니에서 다시 거두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유권자의 인식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받는 자가 없다면 주는 자도 없다. 물론 작년 17대 총선을 계기로 우리의 선거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정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는 오로지 깨어있는 유권자에 의해 완성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선규 청주시 흥덕구 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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