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여학교 교사 재임시절 김마리아의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정선여학교 교사 재임시절 김마리아의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년 6월18일~1944년 3월 13일)를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오는 28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김마리아는 1892년 황해도 광산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계몽운동과 구국활동에 힘쓰던 집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부친이 세운 소래학교와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교사가 돼 교육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대 일제 침탈이 본격화되자 독립의 기틀 마련을 위해 1914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19년 2월 8일 김마리아는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독립선언대회에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했고, 이후 일본경시청에 연행돼 일주일간 취조를 받았다. 김마리아는 도쿄에서의 독립운동 기세를 국내로 확산시키기 위해 2월 17일 현해탄을 건너 조국으로 돌아와 3·1운동 후속활동 논의를 하다 3·1운동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일경에 체포됐다.

6개월 후 출감한 김마리아는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에 참여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여성 독립운동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직원의 배신으로 다시 일경에 체포되고 이듬해 5월 혹독한 고문으로 병을 얻은 채 출감했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김마리아는 상하이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에 힘을 보탰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등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1923년에는 미국 유학을 떠나 여성 독립운동단체 근화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정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마리아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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