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지난 21일 청주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중 숨진 40대 남자가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치매와 척추협착증이 있는 아버지를 간호해왔다. 그의 집에는 목 부위가 눌린 흔적이 있는 80대 아버지가 숨져 있었다. 아들은 유서에서 "아버지를 데려간다. 미안하다"고 썼다.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펴 효자로 불렸던 그는 아버지가 심근경색에 걸리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해 3월에도 청주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아들이 집과 대청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공기업에 다니며, 청각 장애를 앓던 홀어머니를 극진히 돌봐온 그야말로 이름난 효자였지만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살해한 뒤 생을 마감한 것이다. 지난달 초에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던 딸과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어머니가 쓴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딸이 환청 등 이상증세를 보여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몸이 아픈 아내를 15년간 간호해 온 80대 노인이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중태에 빠졌던 경우도 있었다. 긴 병(病)에 효자(孝子) 없다는 옛말이 사실인가? 지병을 앓는 노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수발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잖다. 오랜 세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를, 더없이 사랑하는 자식을, 100년 해로를 약속한 반려자를 용서받지 못할 선택으로 저버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장기간의 간병에 한계를 절감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패륜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 치매나 정신질환 등을 앓아온 가족을 돌보다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간병 살인'이라 한다. 간병 살인은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증가추세에 있다. 물론 그들은 예외 없이 가족을 죽인 패륜 범죄자이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부모, 급성뇌경색에 걸린 배우자, 선천성 발달장애를 앓는 자식까지 대상도 이유도 다르다. 그러나 한때는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사람들이기도 했다.

장기간의 투병생활에 따른 간병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의 증가, 신체적·경제적 부담, 가족 간의 불화 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간병의 터널 속에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밀려오는 중압감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벼랑 끝에서 끈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다. 간병 살인과 간병인 자살은 간병기간이 속수무책으로 길어지면서 빚어진다. 극심한 생활고와 감당할 수 없는 간병 비용이 주요 원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심의보 충북교육학회장·교육학박사.

간병 문제로 자살하거나 가족을 살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책임 부서인 보건복지부의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포용국가 추진계획을 두고 돌봄·배움·일·노후까지 '모든 국민'의 생애 전 주기를 뒷받침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삶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간병이나 돌봄 가족들의 비극적 삶을 돌보려면 사회안전망 차원의 사회복지를 더 촘촘하게 짜야만 한다. 간병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포괄 간호 서비스 확대, 장기요양보험 서비스 대상 범위 확대, 간병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방안 등을 통해 간병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간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병상의 자식과 배우자, 노부모를 숨지게 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비극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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