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맞춘 열린 공간… 네모난 학교가 변하고 있다

[중부매일 김금란·이지효 기자] 혁신교육의 대명사로 불리 우는 북유럽 혁신학교의 핵심은 '아이들'이다. 학교에 학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에게 맞춘다.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혁신학교는 각 나라마다 특색을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수업과 공간 개념에 대한 변화를 들 수 있다. 북유럽 혁신학교에서 공간은 단순히 교실의 개념이 아니다. 언제든지 협력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Open Place)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사방이 막힌 교실이 없고, 우리나라처럼 구조화된 학교는 교실 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미래 교육에 맞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일본도 학교시설 개선에 사용자를 참여시키며 교육공간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학생의 성장 시기와 학제를 고려한 공간배치와 특히 지진을 포함한 여러 자연재해에 대응하고 지역사회 속에서의 학교 역할과 친환경 교육공간을 위한 학교건축을 도입하고 있다. / 편집자

◆핀란드 '라또까르타노 종합학교'(Latokartanon Peruskoulu)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라또까르타노 종합학교는 핀란드 혁신학교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유네스코가 친환경 학교로 인정한 이 학교는 학생 친화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09년 디자인 공모전을 거쳐 다시 지었다. '학교건물은 단순히 공부만하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의 한 부분을 차지 한다'는 이 학교 교사들의 교육관을 반영해 디자인에 '공동체를 위한 공간' 개념을 도입했다.

학교의 실내구조는 연(kite) 모양으로 유리창을 크게 해서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건물 중앙에는 식당 겸 행사를 할 수 있는 커다란 홀을 만들었고, 이를 중심으로 2층 건물은 4동의 홈 지역(home areas)으로 나뉜다. 홈 지역 내 교실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언제든 협력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두 개의 교실이 하나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구조다. 평소에는 각각 수업을 진행하지만 필요한 경우 문을 열고 2개 학급의 교사와 학생이 함께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열린 공간 구조는 학생들의 협력수업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협업도 이끌어내고 있다. 협업을 통해 새로운 교육법을 찾아내는 교사의 혁신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열린 공간은 학생과 교사의 커뮤니티의 활성화도 돕는다.

◆핀란드 '야르벤빠 루키오(Jarvenpaa Lukio) 고등학교'

야르벤빠 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캠퍼스형 고등학교'의 모델이 된 학교다.

이 학교에는 전일제 수업을 듣는 학생 외에도 실업학교에서 오는 시간제 학생, 야간수업을 듣는 지역 성인학생까지 1천여 명이 다니고 있다. 교과과정 운영은 우리나라의 대학 시스템과 유사한 방식으로, '무학년제와 선택 과정'이 핵심이다. 기존 30명 내외의 고정된 학급를 없앴다.

야르벤빠 고등학교는 이러한 교육과정을 실현하기 위해 독특한 구조로 공간을 구성했다. 이 학교의 실내건축구조는 소통과 열린 공간으로 학교 건물 중심부에 천정까지 시원하게 뚫린 원형광장 '아레나'가 설치됐다. 아레나는 카페테리아처럼 꾸며져 평소 식사를 하거나 공연을 하기도 한다. 교사·학생·학부모의 소통 공간 역할도 한다.

교실은 이 '아레나'의 원형 둘레를 따라 방사형으로 설계·배치됐다. 광장 주변에는 책상과 소파가 배치돼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대화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학교는 2003년에 지어졌지만 더 나은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공간 구성과 시설에 많은 노력을 들이면서 우수사례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덴마크 '헬레럽 스쿨((Hellerup skolen)'

공립 기초학교인 헬레럽 스쿨은 '새로운 교육에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기치 아래 건축가와 교사, 학부모가 참여해 열린 공간을 콘셉트로 건축됐다. 이 학교의 수업공간은 모두 개방돼 있고, 학년별로 정해진 교실도 없어 700명(1~9학년)의 학생들은 곳곳에 놓여 있는 원형 소파나 시청각실, 강당, 목공실 등서 수업을 듣는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구성원들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저학년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고학년들이 중재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학생들의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활발해졌다. 교사들도 탁 트인 구조를 통해 다른 교사의 수업을 볼 수 있어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혼자하기 어려운 일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됐다.

하지만 열린 공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됐다. 텐트 같은 작은 공간이 곳곳에 갖춰져 20여명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몸을 맞대고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덴마크의 신축학교는 헬레럽 스쿨처럼 개방형 설계를 도입하고 있고, 기존 학교들은 공간 재배치를 통해 변화를 모색해 나가고 있다.

◆일본 도시마구립 이케부크로 혼쵸 초·중학교

이케부크로 혼쵸 초·중학교는 도시마구의 첫 번째 초·중병설형 연계학교다. 이 학교는 지역의 인구감소와 환경문제, 학교시설 노후화 등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학교는 커뮤니티스쿨의 개념을 도입해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강화했다. 학교의 부지경계를 위한 울타리나 담장도 없다. 건물외벽을 시큐리티 라인(security line)으로 설정해 보행자 공간을 확보하고 지역과의 시각적 물리적 거리를 줄였다. 또한 도로 쪽으로 배치된 아레나, 무도장, 교실외벽을 유리커튼 윌(wall)로 만들어 학생들의 활동을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지진 등 유사시 지역의 방재거점 역할을 하는 이 학교는 빗물 재이용 설비를 도입해 화장실과 조경수뿐만 아니라 재해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수영장물도 유사시에는 화재나 재해용 화장실에 이용하고 있다. 또한 수영장은 날씨와 기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동유리 지붕과 수심조절장치를 갖춰 초·중 공유시설로 이용률을 높였다. 이 학교는 수영장처럼 교육시설을 학생의 성장에 맞춰 설계해 9년의 교육기간 동안 성장의 연속성을 반영했다.

◆일본 미나토 구립 시로카네노오카학원

시로카네노오카학원은 도쿄의 신흥 중심지인 미나토구에 위치한 초·중일관교육학교다. 미나토구는 2010년께부터 기업이 점차 이전해오면서 젊은 층 유입 등의 전환점을 맞으며 선도적 교육비전을 갖고 노후화된 도심 학교 3개(초2, 중1)를 통폐합 방식으로 설립한 미나토구 최초의 1~9년제 초중일관교육학교다.

굿 디자인상을 수상한 이 학교의 설계 콘셉트는 연속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띠'를 모티브로 했다. 건물외관은 전체적으로 리본모양으로 연결돼 있다. 도로에 접하는 하층부와 상층부로 구성됐으며, 하층부와 상층부는 성장하며 오른다는 의미로 커다란 계단으로 연결됐다. 또한 각 층마다 리본모양의 외부 발코니를 설치해 상·하층을 연결함으로써 모든 교실과 운동장의 연계를 실현했다.

1~9학년으로 구성된 학제를 아이들의 성장 특징에 맞춰 1~3기로 분류해 환경과 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1기(1~4학년)는 집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생활과 습관을 익히도록 저층에 배치했다. 2기(5~7학년)는 다양한 신체활동을 위해 운동장과 접하록했으며, 3기(8~9학년)는 상급학교 진학 등의 학습시기로 자주적으로 탐구하고 차분한 느낌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 학교 관계자는 "띠나 곡선을 이용한 학교건물이 건축학적으로 우수하고 시선을 끌기 위한 것으로는 좋다"면서 "하지만 공간을 채우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위험요소가 많고 굿 디자인이 바로 교육의 효과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취재진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글·사진 / 김금란, 이지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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