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취재본부장

인간은 한자어로 '人間'이다. '人'은 '혼자 설 수 없어 서로 의지한다.'는, '間'은 '사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서로 접촉과 분리를 반복한다는 말이다. 접촉과 분리의 거리는 그 상황에 따라 원근(遠近)이 교차한다. 얼굴을 맞대고 있거나 특정 공간에 속한 사람들의 사이는 가깝다. 반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인종, 종교, 계급 등의 비 공간적 차이로 반목과 적대감이 개입할 때 그 사이는 멀다.

인간이란 단어가 함축하듯 사람은 몸짓과 언어 등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면서 더불어 산다. 비로소 생물적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 되며 사회구성원이 된다. 사람, 집단 간의 거리와 친밀도는 반비례한다. 이 거리가 바로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다.

'사회적 거리'의 사전적 정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친근하거나 소원한 감정적 거리'다. '사회적 거리'는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Robert E. Park)가 1924년 제창한 개념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개인적 관계를 특징짓는 친밀도와 이해의 정도를 측정 가능한 용어로 축약하는 시도"라고 '사회적 거리'를 정의한다. 공동체 등의 공간이나 계급 등의 비 공간에서 사람 관계의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친밀(親密)감이나 소원(疏遠)감을 측정하는 척도라고 봤다.

'사회적 거리'는 거리 정도를 결정하는 주체에 따라 '정동적(情動, affective)과 규범적 (normative) 거리'로 나뉜다. 개인(집단)이 타인(타 집단)에 대해 느끼는 친밀성의 정도를 결정할 때 그 거리를 '정동적 거리'라 한다. 단 '정동적 거리'는 이미 상호 신뢰를 담보한 사회관계 상황에서만 성립된다. 전혀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거리'의 정도나 유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는 이 같은 수평적 사회관계뿐만 해당하지 않는다. 위계서열의 상하관계나 신분, 직업의 차이 등 사회적 지위가 다른 수직적 사회관계에도 적용된다. 특히 사회적 지위에 근거한 사회적 거리는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 굳어져 당연시하게 된다. 이 거리는 개인(집단)이 '정동적 거리'와 달리 그 원근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이 거리가 바로 '규범적인 사회적 거리'다. '사회적 거리'의 주체가 자신(집단)이 아닌 규범이라는 점에서다.

이 전문용어가 요즘 언론에 회자하며 평범한 용어가 됐다. 심지어 국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자칫 사람의 근본 특성을 부정하고 불신하는 사회를 조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있다. 본래 '사회적 거리'는 친밀성과 적대감의 정도에 따라 자의적 판단과 규범에 따른다. 반면 요즘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친밀성과 적대감과 관계없는 데다 거리의 정도 차원도 아니다. 아예 사회관계를 끊는 행위다. 대면적 만남의 포기다. 물론 일시적이지만 말이다.

국가는 접촉을 금하고, 다중 집합 장소와 폐쇄된 공간 등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사람들은 서로 접촉을 차단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실천한다. 사람들은 인간과 사회의 근본인 '더불어 삶'을 침해하고, 국가는 사람들에게 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고하는가? 국가가 나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조장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는가?

사회가 갈수록 복잡화와 분업화되는 데다 사람들은 공간적, 비 공간적으로 촘촘히 연결되는(networking) 21세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를 두라니? 동일한 공동체나 사회에서의 '사회적 거리'는 가까워져야 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이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도 말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취재본부장

사상 초유의 '사회적 거리' 두기 이유는 사람도, 집단도, 사회도 아닌 엉뚱한 곳에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이다. 이 역병(疫病)은 전파력이 강한 데다 백신도 개발되지 않아 그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적 거리' 두기, 아니 사회관계 차단은 국가가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내건 한 방법이다. 아니, 코로나19 대란이 아닌 마스크 대란을 초래한 정부가 짜낸 고육지책이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일까? 아니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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