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충청본부장

기원전 그리스신화 시대, 인간과 요정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은 펠레우스, 신부는 테티스였다. 펠레우스는 유부남으로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에 있는 프티아(도시 국가)의 국왕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이자 제우스의 손자다. 테티스는 바다의 신이자 딸부자, 네레우스의 50명의 딸 가운데 하나로 바다에서 자랐다. 출중한 미모로 제우스와 포세이돈 등 여러 신의 청혼을 거절하고 유부남을 선택했던 여신이었다.

사실 테티스가 제우스의 청혼을 거절한 것이 아니고, 제우스가 잔머리를 굴려 포기한 것이 맞다. 무소불위의 제우스가 테티스의 청혼거절에 물러설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탁(神託)이 문제였다. 테티스와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자신보다 더 위대해진다는 신탁. 신의 왕 격인 자신보다 더 위대해진다고? 제우스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제우스는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요정의 결혼인 데다 신부가 최고의 미모이니, 그들 결혼식에는 초대 여부와 관계없이 올림포스의 신들은 물론 도시국가의 왕들의 주목을 끌었다. 많은 신과 왕이 초대를 받았지만 받지 못한 여신이 있었다. 불화(不和)와 전쟁의 여신인 에리스였다. 초대받지 못한 이유는 불문가지. '불화와 전쟁 여신'이 결혼식에 참석해 신랑신부에게 불화와 전쟁을 치르게 할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에리스는 묵과할 수 없었다. 연회장 밖에서 맴돌던 에리는 몰래 황금사과 하나를 연회장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황금사과에는 '최고의 미인에게 '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하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황금사과의 주인'이라는 메시지였다. 당시 내로라하는 여신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그 중 헤라(그리스의 최고의 여신, 제우스의 아내), 아테나(지혜, 학예, 공예의 신. 제우스의 첫째 아내 메티스의 딸), 아프로디테(연애와 미의 여신.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의 딸 혹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절단해 바다에 던졌을 때 주위에 생긴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 즉 새엄마와 두 이복 자매들이 미모를 주장하며 황금사과를 차지하려 나섰다.

신계(神界)에서 전무후무의 미인선발대회가 열렸다. 심판관은 파리스(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의 아들)로 정해졌다. 세 여신은 미모만을 무기로 삼을 수 없었다. 미모 수준의 차가 백지장과 같았기 때문이다. 파리스가 뇌물에 약한 것을 감지한 이들 여신은 비밀리 뇌물공여 작전을 폈다. 헤라는 절대 왕권을, 아테나는 전쟁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최고의 미인을 뇌물로 선택했다. 아프로디테가 뇌물로 삼은 여인은 스파르타 최고의 미녀 헬레네(국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파리스는 세 여신의 미모를 따지기에 앞서 뇌물의 가치 평가에 골몰했다. 파리스는 어차피 왕자이니 왕이 될 것이고, 트로이는 철벽 수비로 패배란 있을 수 없으니 헤라와 아테나의 뇌물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 미인은 달랐다. 결국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면서 신들의 미인선발대회는 끝났다.

일단 다른 두 여신의 이의제기 없이 순탄하게 아프로디테는 황금사과를 차지하고, 파리스는 헬레네를 취하게 됐다. 아프로디테가 헬레네의 마음을 움직였고, 급기야 헬레네는 파리스와 불륜을 저지르고 트로이로 도망갔다. 절세의 미인을 얻은 파리스 왕자는 하루가 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뇌물의 대가는 저 성벽 너머 불운의 먹구름이었다. 메넬라오스의 트로이 공격으로 시작된 1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이었다.

트로이는 망했다. 파리스는 아킬레우스를 화살로 발뒤꿈치를 쏘아 죽였지만, 스파르타의 최고 궁수(弓手)인 필록테테스의 활에 맞아 죽었다. 망국과 죽음의 화근은 미인 뇌물이었다. 내부고발 자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파리스는 미인대회에서 탈락한 두 여신의 주도면밀한 복수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여신의 복수 실행이 바로 트로이전쟁이었다. 신이 주고 인간이 받는 뇌물의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인간, 파리스는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죽음을 당했다. 물론 뇌물을 준 신은 달콤한 사과를 먹었지만….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충청본부장

떡 준다는 말에(결국 받아먹음) 권력을 몽땅 위임한 우리는 파리스와 같지 않을까? 뇌물반환은 불량한 양심을 면하지 않는다. 받으면 끝이다. 여기서 다만 파리스 꼴 나지 말기를 기대할 뿐이다. 파리스가 세 여신의 누드를 보며 미모를 심판하는 모습을 그린 루벤스(벨기에 출신)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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