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투성이 나라
모순투성이 나라
  • 중부매일
  • 승인 2020.09.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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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 때 한 시장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을 밥 먹듯 하는 시기여서 시장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식품이나 생활도구보다 무기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러 무기상인 가운데 이 시장에 처음 창과 방패를 팔러온 젊은 상인이 유독 관심을 끌었다.

이 상인은 자신의 창과 방패가 예상외로 잘 팔리지 않자 한숨만 쉬고 있었다. 옆 자리 나이 지긋한 상인이 "바로 저쪽에 무기 상인도 있는데, 왜 하필 여기서 팔겠다는 거요. 아마, 무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라고 한마디 했다. 막 무기를 사려고 살펴보던 중년이 "마음에 드는 무기가 없네. 성능을 믿을 수도 없고"하며 자리를 떴다.

염장 지르는 언행에 화가 나 그냥 있을 수 없었던 무기 상인은 갑자기 방패를 들고 일어섰다.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어요. 단단하고 두껍지만, 가벼운 게 특징이지요" 목청껏 자랑했다. 옆에 있던 상인이 "저 옆에 있는 창은 어떠하오?"라고 물었다. 무기 상인은 창을 집어 들고, "끝이 날카롭기와 튼튼함이 최고입니다. 이 창으로 뚫지 못하는 것이 없어요. 아무리 단단한 방패라도 말이요"라고 외쳤다.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던 옆 상인이 무기 상인에게 물었다. "어이 젊은이, 그럼 그 창으로 저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 무기 상인은 순간 멍한 모습을 보이며 머리만 극적일 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릇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못 뚫는 것이 없는 창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夫不可陷之盾與無不陷之矛,不可同世而立)'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 나오는 이야기로, '모순(矛盾)'이란 고사 성어다. 한비자는 요 임금의 명찰(明察)과 순 임금의 덕화(德化)를 가릴 수 없음을 비유하기 위해 창과 방패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던 것이다. 모순은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자상모순(自相矛盾, 스스로 서로 모순)'이라고도 한다. '아는 게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란 속담이 전형적 모순이다.

요즘 시국이 이런 모순투성이 아닐까? 흑백논리, 타협과 배려 그리고 용인의 실종.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집단 간 상호불신, 극에 달한 집단 이해관심, 빈부 대립, 사상의 양극화, 맹신과 불신의 첨예화, 합리성의 상실 등의 사태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아니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멀리 보면 붙어있는 선로지만 가면 갈수록 영원히 붙지 않는 선로와 같은 상황이다. 모든 게 부조화요, 이율배반이다. 출구를 가늠조차 못하는 터널을 달린다.

정치권은 칼자루 쥔 자들이 마구 휘둘러 대는 시장통이 됐다. 쪽수로 밀어붙이며 의기양양하다. 칼자루가 썩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장잡배나 가능한 막말 투쟁 역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다. 통치성(governmentality), 국가 통치의 합리성도 결여됐다. 정치는 사법, 언론, 의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포획하고 자율권을 탈취했다. 이러니 서로 조화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다 원인 귀속을 해야 하는가? 그저 나라 운영을 표 하나로 맡긴 선량한 백성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아니 울분을 토해도 모자라고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것이 더욱 비참한 처지다. 할 수만 있다면 그 표를 모조리 환수하고 싶다.

이 모순 사태에서 우리가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헤겔 철학이 아닐까? 헤겔이 모순을 진리 탄생의 씨앗이라 봤다는 점에서다. 그는 인식이나 사물은 정립(正立) 반정립(反) 종합(綜合)의 단계를 거쳐 전개하는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정립'은 내적으로 모순을 포함하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단계이고, '반정립'은 이 모순을 드러내는 단계다. '종합'은 인식이나 사물이 모순에 부딪힘으로써 종합 통일하는 단계다. 이처럼 변증법을 존재 인식에서 논리까지 확대한 그는 '모순'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당초 모순은 대항 모순과의 투쟁을 통해 사라지고 새로운 진리로 탄생한다는 의미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우리의 모순은 언제 변증법적 논리에 적용이 될까? 요즘에 와서 극도로 심해지긴 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암 세포가 된 모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변증법 논리가 포획하기에는 실기(失期)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모순투성이면서도 대항 모순을 키우지 못함을 보고 마냥 끙끙 앓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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