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와 코로나19 그리고 국가통제
한가위와 코로나19 그리고 국가통제
  • 중부매일
  • 승인 2020.09.22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한가위 때면 늘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다. 한자어로는 '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가야물 감야물 단원장사가배일)'이다. 한자어니,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다. 우리 한자식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누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최초 발설자와 근원은 알 수 없다. 단지 조선 1819년 김매순(金邁淳)이 쓴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 지금의 서울인 열양의 세시풍속 80여 종을 월별로 구분, 해당 절후와 그에 따른 풍속을 간략히 적은 책)'에 전해진다. "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이달(음력 8월 5일)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中秋)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왜 일 년 내내 한가위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한가위는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한가위는 보름달을, 이 보름달은 더 커질 수 없는 만월(滿月), 즉 최고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풍성함은 물질적이고 정신적 측면 모두를 포함한다.

한가위는 하늘과 땅에 한 해 농사 잘된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는 날이다. 한가위 전에 햅쌀로 송편과 술을 빚고, 닭이나 돼지를 잡아 요리하고, 텃밭 둑에서 탐스럽게 익은 과일도 수확한다. 이렇게 마련한 음식을 정성스레 차례상에 올려 하늘과 땅에 예를 표한다. 내년에도 풍년을 기원하고 가족 평안을 빈다.

한가위 때는 수확의 계절이라 오곡백과가 풍성했다. 그러나 일부 양반을 제외하곤 많은 백성은 그 모두가 그림의 떡이었다. 백성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고픔에 굶주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례상 차리기가 그리 쉽지 않았지만 당시 관습으로는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도 차례상만큼은 풍성하게 차려야 했다. 빚을 내서라도 말이다.

사실 이것은 대외적 명분이었고, 속뜻은 다른 데 있었다. 늘 굶주림에 시달렸으니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한가위만큼은 실컷 먹어보자는 심산에 있었다. 특히 한가위 때는 농사일도 멈췄다. 늘 일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풍성한 차례상의 명분상 목적은 풍요에 대한 감사와 바람이고, 속셈은 단 하루라도 배불리 먹어보고 실컷 놀아보자는 데 있었다. 내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오늘이 중요했다. 이처럼 한가위 때는 먹고 노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을 바랄 수 있겠는가. 한가위가 최고지. 한가위가 지나면 궁핍 생활로 다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더도 말고 덜도 한가위만 같기만 바란다.'는 빈한한 삶을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고달픈 생활상이 담긴 속담이다. 따지고 보면 드러내놓을 만한 속담은 아니다. 물론 지금이야 한가위에 과거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올 한가위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과거처럼 굶주림의 해소와 배부름의 기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의 화목도 효심도 포기해야 한다. 인류에게 '코로나19'바이러스가 침공했기 때문이다. 발병한지 벌써 10여 개월이 지났지만, 그놈의 바이러스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확산세는 갈수록 강력해저 자칫 인류를 멸망시킬 기세다. 많은 사람이 생활 반경을 축소하며 한가위 귀성을 포기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대응 차원에서 더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국가는 벌초와 귀성을 자제, 아니 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한다. 분명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강제적 기구다. 늘 권력 행사에 굶주려있다. 이제 국민을 통제할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거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국가 개입이 일상생활 곳곳으로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다. 국가는 신이 났다. 허나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꼴'이란 인상을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왜 일까?

코로나19 이후 거대해진 국가의 강력한 통제. 이른바 코로놉티콘(Coronopticon, Corona+Panopticon)이다. 팬데믹 명분을 들어 공포감 조성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권력을 남용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