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고락골 안 노인은 큰 아들이 의용군에 간 뒤부터 삽짝을 닫지 않았다. "아버지~"하고 부르며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밤낮없이 활짝 열어 놓는다. 이웃 마을에서 오래 전에 의용군에 갔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서부터 자기 아들도 꼭 살아서 돌아올 거라며 어떤 날은 한밤중에 동구 밖까지 나가 기다리기도 했다.

안 노인은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눈도 못 감고 미장가의 유복손자를 남겨놓고 환송객도 없이 쓸쓸하게 저승길을 떠났다. 홀아비 삼대가 살던 집 삽짝은 그날도 열어놓은 채였다. 그래도 하늘에선 보고 있겠지?

아버지처럼은 살기 싫다고 지게 작대기 팽개치고 뛰쳐나간 자식이 소식이 없다. 배고프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군대 갈 나이가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다. 이번 명절엔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린 지도 십 수 년이 훌쩍 지났다.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식에 찾아가보면 스치지도 않았단다. 이번 추석엔 들어오려나? 이렇게 문명한 날에도 찾을 수 없다니 기가 막힌다. 아직도 일어서질 못했나?

결혼 허락 안 해준다고, 말도 없이 자취 감춘 막내딸이 어디선가 터 잡아 식구도 늘렸을 텐데 살기가 힘든지 전화 한통이 없다. 사귀던 사내는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니 수소문도 안 된다. 때 되면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제 엄마가 병들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가 다됐는데도 기척이 없다. 흙이 들어가면 오려나?

가난에 쪼들리며 살기 싫다고 젖먹이까지 떼놓고 도망간 하늘 길로 온 며느리는 팔자를 잘 고쳤는지 소식이 없다. 갓난 애 키우기 막막해 얼굴까지 내놓고 신고를 했는데도 찾을 길이 없단다. 머리카락 보일까봐 꼭꼭 숨었나보다. 돈 되는 것 다 팔아서 살던 곳으로 갔나? 애보고 싶으면 돌아오겠지?

미세먼지 피하는 김에 코로나도 이겨보자고 부부가 심심산골 빈집에 둥지를 틀었다. 전화도 카드도 인적도 끊었다. 한참 만에 눈치 챈 가족들의 실종신고도 효과가 없다.

자가 요양원 마다하면 그 다음은? 올 추석엔 이동하지 말자니 실낱의 기대도 접었다. 엄동 전엔 들어오시겠지? 주유천하하다가 싫증나면 환속하려나? 설 쇠면 오겠지? 걱정도 팔자다. 무소식이 희소식 아닌가!

코로나19 경제 불황으로 인한 부채와 체불 해결을 위해 살 사람도 업는 업체를 매각하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 더해도 재원마련이 막막해진 업주가 폐업신고를 하고 잠적했다. 나 몰라라 목숨을 끊어도 해결이 안 된다. 가족의 참담은 차치하고라도 고생한 가족들의 생계는 더 기가 막힌다. 어찌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추석 쇠면 해결될까?

누가 결자해지의 주인인데? 요즘 하늘은 카드정지로 돈벼락도 못 친다지?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경제를 살리자니 내가 갈 거고, 나 살자니 더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을 게 뻔하다. 저 살겠다고 떠난 자식은 추석을 수십 번 쇠도, 아니 죽어서도 안 돌아온다. 오죽하면 미련퉁이라고 하겠는가? 나이 들어 거동 불편한 기저질환의 한 생명 살리려고 얼마나 많은 의료진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최선을 다해 왔는가? 함께 사는 세상, 한 번 만이라도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 위해 구슬땀 한 번 쭉 흘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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