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에게는 수상한 일이 주변에서 계속 벌어진다. 그러던 중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모피어스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스스로 불편할 수 있는 진실 혹은 현재의 안락한 허상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는다. 네오는 진실을 선택했고 지옥보다 처참한 현실과 마주한다.

매트릭스에서 처참한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숨겨진 진실을 알려줄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다. 영화 밖 세상도 매트릭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진리 혹은 진실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진실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참혹한 현실과 싸우고 있다.

현실은 언제나 믿고 싶은 진실보다 불편하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극복하고 싶어하는 한계상황에서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진실에 대한 증거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과 같이 진실은 보이지 않고, 간혹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간접 증거만 간간히 있을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증거가 있어야 믿는 것이 상식인데 믿음이 곧 증거라 하니 이는 명백한 순환논증의 오류 같지만 이것이 상식을 뛰어넘어야 하는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 종교의 본질이다. 재판에 임하는 변호사의 업무는 의뢰인이 주장을 진실로 믿고 의뢰인이 믿음을 법정에서 다투어 진실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종교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재판은 변호사의 믿음을 법정에서 적극 개진하는데서 시작한다. 결국 재판에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진실'을 판단하고 대법원에서 이것이 진실임을 최종적으로 선언하면서 재판은 끝난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말 객관적 진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재판에서의 실체적 진실은 심급을 달리할 때마다 바뀌는 경우가 많고 대법원의 선언으로 확정된 이후에도 수 십년이 지나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사실에 비추어 진실은 언제나 개인의 믿음에 따라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세계의 진실은 누구에게나 그렇다고 인정되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고 결과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자신의 진실과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변호사의 모습은 패소한 당사자의 시각에서는 거짓말쟁이로 보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변호사를 주제로 한 영화 중에는 변호사를 'Devil's Advocate' 즉, 악마의 옹호자로 그린 것도 있다. 어떤 변호사 주제 영화의 제목은 직설적으로 'Devil's Advocate'였다. 미국 조크에는 변호사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보통 변호사들은 거짓말의 화신으로 그려지며 희화화된다.

변호사는 믿음에 따라 변론하였을 뿐인데 상대방의 눈에는 자신의 진실과 다른 말을 하는 상대방 변호사가 얄미워 보일 것이다. 승패소와 관련없이 재판마다 변호사에게 적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승소하면 상대방 하나로부터 욕을 먹고, 패소하면 상대방과 우리 의뢰인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연차가 쌓이면서 필자의 믿음이 재판에서 진실로 확인되어 승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큰 이슈가 된 사건에서도 의뢰인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악마의 옹호자로 악명(?)을 빠르게 쌓아 가고 있다. 처음에는 욕받이가 되는 것은 변호사의 숙명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칭송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필자가 화려한 인맥과 거금을 동원해서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주무르고 다니는 악의 화신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는 이야기에 이르러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와 보자. 필자는 모피어스 같은 사람으로서 의뢰인이 말한 진실을 믿음으로 섬기는 자일뿐이고, 패소한 사람은 스스로 진실에 다가가는 약을 먹었다 처참한 현실을 마주한 주인공 네오일 뿐이다. 그런 분들에게 네오처럼 현실을 타계하게 위해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그 아직 보이지 않는 본인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니 나의 믿음을 관철시킨 필자를 탓하지 말고 현실극복을 위해 힘써달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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