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성진 사회부장

매년 이맘 때만 되면 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고참급 경정들은 좌불안석이다. 지옥을 경험할 정도로 처절하고 불안정한 일상이 수개월씩 이어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공무원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경찰조직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경찰과 군(軍)에만 존재하는 계급정년 제도 탓이다.

경정 승진 이후 14년 동안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강제 퇴직에 처한다. 한창 일할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도한 승진 경쟁을 부추기는 폐단으로 지목된다. 이는 경찰관 사기 저하, 업무 공백, 치안서비스 질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경찰은 오래 전부터 승진 적체 해소를 목표로 복수직급제 도입을 논의해왔다.

복수직급제는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해 직무의 난이도 등을 고려해 주요 보직에 복수의 직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총경(4급 상당)이 맡고 있는 경찰서장이나 지방청 과장에 경무관을, 경정(5급 상당)급 보직인 경찰서 과장이나 지방청 계장에 총경을 임명할 수 있어 인사숨통을 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험이 풍부한 간부들이 실무를 맡을 경우 업무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특히 총경 등 특정 직급에 대한 과도한 인사 수요를 해소할 수 있고, 인력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다.

복수직급제는 1994년 최초로 일반직 공무원에 도입돼 직원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검찰사무직 등 일반직 공안직군과 특정직인 경호직에는 복수직급제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으나 경찰에서는 기약도 없이 공회전만 하고 있다.

예산 부담 등으로 번번히 정부부처에서 무산되기 때문이다. 복수직급제는 공무원법 개정 사안이라서 국회에서도 논의를 거쳐야 하는 등 첩첩산중이다. 복수직급제 도입이 인사적체 해소의 만능키는 아니다. 복수직급제를 도입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간부 자리가 한정된 이상 한계에 봉착할 게 뻔하다. 지휘체계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경찰에서 복수직급제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짚어볼 대목이다.

복수직급제 도입이 지금 당장 어렵다면 계급정년제 폐지를 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폐지는 능사가 아니다. 중간 계급 비율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단칼에 계급정년제를 잘라버리면 기존 고위직의 기득권만 강화되는 후폭풍이 우려된다. 승진은 포기한 채 유유자적하는 간부가 등장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꼴이다. '경포청(경무관을 포기한 경정)', '총포경(총경을 포기한 경정)' 양산이 불가피하다.

박성진 사회부장
박성진 사회부장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장·단점만을 따지며 책상머리 논의만 할 건가. 복수직급제는 이미 검증된 제도다. 도입 이후 문제점이 파악되면 발전적으로 개선하면 그만이다. 최소한 경찰간부들이 정치인 뒤꽁무니나 쫓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게 자질과 역량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복수직급제 도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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