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오랜만에 대면수업이 허용된 어느 중학교의 풍경이다. 교실 내에서 거리두기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답답하고 불편하다며 턱스크를 한다. 그러자 지도교사의 바로 앞에 앉았던 학생이 갑자기 일어나 가방을 챙겨 교실 뒤쪽으로 간다. 눈치 챈 선생님이 입스크로 바꾸고서 수업을 계속하려는데, '선생님, 거기서 오래 계시려면 제발 꼰대 짓 좀 하지 마세요!'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지 구분이 안 가리라. 이제 꼰대는 교단에서 내려가라는 경고인가?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작되고 TV화면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인터뷰를 할 때에 턱스크를 한 모습이어서 저게 뭐하는 짓이냐는 비난이 있었다. 턱스크란 말이 그 때부터 유행했는지도 모르겠다. 푹푹 찌는 더위로 숨이 가빠 숨통 틔우느라 그랬을 것이라 이해는 되지만, 코로나 백신인 마스크 착용 의무화의 국민 모델로는 적절하지 못했다. 그들도 꼰대라서 그랬나?

누군가를 꼰대라고 말하는 이들의 용어적용기준이 저마다 일정하지 않으니 주변에 꼰대아닌 이가 없을 정도다. 친구 간에도 말이나 행동이 어른스러워 거리감이 생기면 꼰대 같은 소리 하지마라며 경고성 메시지도 보낸다. 생각과 표현, 동작과 줄서기를 순간에 맞추어야 꼰대를 면할 수 있으니 꼰대의 낡은 자리에서 벗어나 젊음의 새 자리로 가려면 눈치구단은 되어야 하리라. 그건 또 뭣에 필요한 건가?

꼰대가 가지는 여러 의미 중에서 비교적 보편적인 것은 1960~70년대에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자녀나 학생에게 강요하는 부모나 연장자와 선생님을 지칭하는 학생이나 청소년들의 속어로 이른바 꼰대질하는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며 사용해 왔다.

나이 좀 들었다고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마치 오랜 경험에 터한 삶의 불변진리처럼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설교하는 이를 부르던 말이 2~3세대를 지나면서 그 쓰임이 매우 다양하게 진화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그런데 그 말도 안 된다는 꼰대들의 주의·주장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비(젊은)꼰대들의 기발한 발상과 충돌하면서 삭은 것들 떨어내고 알맹이(核心)만 찾아 정반합(正反合)의 번뜩이는 칩(chip)을 내놓으니 새 생의 든든하고 탄탄한 버팀 목 되어 새로운 미래에의 도전을 약속한다. 이렇게 정리하면 지나친 비약인가?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며 법고창신과 온고지신을 역사의 흐름이라 일러준 이들을 꼰대라고 안 보이게 젖혀놓으면 꼰대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돌아선 비(非)꼰대들은 무엇으로 종자를 삼을 것인가! 또 다른 창세기라도 쓸 작정인가?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그렇게 못마땅해 하던 꼰대들이 있었기에 그 후계자를 자청한 당신이 존재했고, 당신이 만족해할지는 모르지만, 그 가르침 받아 이만큼의 안정을 누리고 있음을 어찌 모른 체 하겠는가? 꼰대가 비속어처럼 들려 마뜩하지는 않겠지만, 그 속에 진리와 정의, 역사와 진실이, 전통과 창조, 의리와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밝을 것이다. 이제는 믿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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