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팔도 인삼보따리 이고 다닌 '어머니를 위한 헌사'

금산문화의집 그림책 프로젝트를 이끈 주인공들. 사진 왼쪽부터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쓴 남인혜씨, 친구 이야기를 담은 박복기씨, 프로젝트를 기획한 안은경씨, 사업을 총괄한 박시영 사무처장. / 김정미
금산문화의집 그림책 프로젝트를 이끈 주인공들. 사진 왼쪽부터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쓴 남인혜씨, 친구 이야기를 담은 박복기씨, 프로젝트를 기획한 안은경씨, 사업을 총괄한 박시영 사무처장.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1960년대 후반, 가족을 위해 인삼 보따리를 싸고 전국을 다녔던 금산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그림책으로 나왔다. 금산문화의집은 최근 마을고유 특성을 살린 그림책 프로젝트 결과물로 '인삼행상을 떠난 우리 엄마'를 펴냈다.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집필진이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회에서 낭독에 참여했다. 무거운 인삼 보따리를 짊어지고 기꺼이 전국을 다녔던 금산의 어머니들. 덕분에 금산인삼의 우수성도 전국에서 인정받게 됐다. 프로젝트의 주역들을 만났다. / 편집자

충남 금산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인삼보따리를 이고 전국으로 행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60년대에 길을 나선 1세대는 특히 어려움이 많았다. 물설고 낯선 타지를 완행열차로 가자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교통이 불편해 걷는 일이 많았다. 겨울을 제외하고 계절 또한 가리지 않았다. 1채에 750g인 인삼을 10채 정도만 머리에 이고 구매력이 높은 타 지역을 짧게는 5일에서 10일 넘게 다니며 인삼을 팔았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커다란 인삼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행상을 떠나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걸어서 홀로 낯선 먼 곳으로 행상을 떠납니다. 인삼에서 열이 나기 때문에 상하는 경우가 있어서 욕심만큼 가지고 가기가 어려워 머리에 일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가셨습니다. -책 본문 中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80년대는 택시를 대절해 다니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택배문화가 발달하면서 인삼행상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금산 사람들은 어머니들 덕분에 금산 인삼의 우수성이 전국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금산의 많은 아이들은 어머니의 인삼행상 나가는 길을 배웅하며 자랐다. 마을 주민들의 돌봄 속에 형제자매들과 함께 스스로 자랐다. 가정과 지역경제의 중심에 보따리를 이고 길을 나섰던 금산의 어머니가 있었다.


이번엔 며칠이나 걸릴까. 엄마가 보고 싶어 인삼밭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인삼밭에 가면 인삼냄새가 나고 엄마한테 그 냄새가 났습니다. 같이 있지 않아도 엄마를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는 나를 예뻐하는 만큼 인삼을 언제나 소중하게 다루고 잔뿌리라도 다칠세라 정성을 다했습니다. -책 본문 中

가난했던 시절, 치열한 삶을 살아낸 금산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기획자 안은경씨는 책 발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금산의 힘은 어머니들의 희생과 용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문 작가가 아닌 주민들이 창작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세대 간 소통을 이끌려는 기획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 잊히는 마을 고유의 이야기가 선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것, 진짜 초보자들이 지역의 창작자가 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그림책에는 인삼행상을 떠나 본 충남 금산의 어머니라면 누구나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용어조차 낯선 세대를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려고 선택한 방식이 그램책이다.

취재를 하면서 어머니들의 눅진한 삶을 이해한 며느리도 있었고, 투병중인 친구의 고단했던 사람에 위로를 건넨 주민도 있었다. 박복기, 김순희, 김미영, 김희영, 남인혜씨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4개월 동안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다.

집필진 최고령자인 1939년생 박복기씨는 친구를 인터뷰했다. 김희영씨와 남인혜씨는 각각 시어머니를 인터뷰했다. 남인혜씨는 인삼을 팔러 다니며 가정의 생계를 꾸려온 시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인삼밭으로 나가 컴컴한 어둠속에서 풀을 메고, 정작 자식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기억도 안 나신다는 어머님은 손주들을 너무 예뻐해 주십니다. 휘어진 손가락과 거칠어진 손결에서 삶의 무게를 견딘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기획자 안은경씨는 책 서문을 펴내며 이런 제목을 달았다. '멋진 삶을 살아낸 엄마들을 위한 작은 시'. 서툰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은 짧지만 울림이 길다.


지금까지 금산을 살게 한 인삼, 그 인삼 안에는 금산 엄마들의 고단한 인생이 담겨있습니다. 또 인삼 행상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외로움과 외로운 아이들을 함께 키워낸 마을 사람들의 애정도 담겨있지요. 이 모든 것이 더해진 것이 바로 인삼입니다. 금산을 풍요롭게 한 힘은 인삼과 금산 엄마들이 일궈낸 노력과 사랑 덕분이지요. 우리들은 그 터전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 본문 中
 

그림책 프로젝트를 주관한 금산문화의집 박시영 사무처장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림책을 연극 내지 뮤지컬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고 있다. 금산에서 인삼의 의미, 인삼행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고단했던 어머니들의 삶에 공감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박 사무처장은 금산 인삼행상 어머니들의 수고에 마땅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했다. 형식은 다큐멘터리, 뮤지컬, 연극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림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빨갛게 익은 인삼 열매를 가리키며 엄마는 어린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식처럼 귀하다 해서 인삼 딸이라고 한단다. 이 딸이 자라서 인삼이 되는 것이지. 우리 금산의 특산물이다.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해주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약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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