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올 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접촉과 함께 택배 물량이 갈수록 늘고 있다. 택배 업체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다. 급기야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시간을 대폭 늘려 심야 배송 작업을 벌이는 등 폭주 물량에 대처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일에 지쳐 졸지에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장시(기)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過勞死)다. 해도 해도 너무 많이 일을 시켰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이후 택배 노동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71시간에 달했다고 밝혔다.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주당 법정 근로시간 52시간보다 무려 19시간이 많다. 노동이 아닌 학대다. 이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대책위는 '과로사는 사회적(구조적) 타살'이라며 정부와 업체에 과로사 종식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했다. 코로나19 이후 12월 중순까지 택배 노동자 14명이 과로사했다는 것이 대책위의 공식 집계다. 물론 과로사 판정을 놓고 기업체와 유가족 그리고 의학계 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폭무와 전혀 관계가 없다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회적 타살(Social murder). 사람이 죽었는데 그 범인이 집단, '사회'라는 말이다. 엥겔스의 저작<The condition of the working-class in England>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그는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타살을 지적했다. "현재 사회정치적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계급(예, 부르주아지)은 수백만 명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요절(夭折)과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처지로 몰고 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타살을 산업 자본주의 출현의 공포 속에서 노동자와 시민을 체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살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당시 노동 계급을 죽이고 열악한 삶으로 몰고 간 상황을 자본주의 사회적 관계의 결과라고 봤다. 노동 계급은 자본가의 탐욕에 의해 열악한 노동 조건과 저임금 등으로 질병을 얻게 되었다. 노동은 부르주아지의 지갑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그 지갑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생산수단을 독점한 부르주아지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부르주아지가 사회적 타살을 알고 예방할 수 있었지만, 방관했다는 점이다. 오로지 지갑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노동의 가치를 임금과 각종 복지 혜택과 등가(等價)로 여기지 않았다. 죽도록 일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절대 부족했다. 노동 가치와 임금의 부등가 원칙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과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무능력감은 삶의 의욕을 좌절시켰다. 이는 죽음으로 이끌었다. 노동자는 사회적 타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회적 타살은 특정인이 타인을 죽이는 살인 범죄와 다르다. 사회가 사회경제적 약자(특히 노동자)에게 저지르는 범죄로 인과관계 규명과 처벌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칼, 총 등 흉기에 의한 살인 못지않게 사회적 충격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범행도구가 과도한 노동, 저임금, 차별 등의 사회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일반 살인 범죄와 다르다. 사회 구조적 요인, 사회성과 관계성이 반영된 죽음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지만 주로 노동시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 과로사는 착취와 배제에 그 원인이 있다. 착취는 노동자가 노동으로 생산한 가치를 노동자에게 충분히 보상되지 않고 자본가가 대부분을 가져가고 잉여가치는 아예 독식하는 것을 말한다. 배제는 동일한 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임금과 복지에서 차별적으로 대우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타살이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사회적 타살의 정도가 심각성의 수위를 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불평등과 계층 양극화는 노동 시장체계의 불안정과 붕괴 등을 초래하는 암적 존재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막강한 생산수단인 자본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이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불평등을 감내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노동의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의 심화로 사회적 타살을 부추긴다. 승자독식과 기회 독점 그리고 성과중심주의 무한 경쟁만을 강조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가 사회적 타살의 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판도라 상자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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