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그림이나 글을 보존하고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표구(表具)', 이 업을 하는 곳을 표구사나 표구점이라 한다.

표구사는 현재 찾아보기 힘든 업종이 됐고, 젊은 층에선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추억의 업종이다.

그런데 아직 법과 조례에서는 이 표구사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각종 건축 제한 업종에 표구사는 제외되는 특례를 받는다. 자치단체에서 운용하는 '도시계획 조례'를 보더라도 건축 행위를 제한하는 경관지구 등 일부 구역에선 이 표구점은 허용한다.

예전이면 모를까 현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표구점을 찾는다고 적지 않은 업종을 제한하는 경관지구에서 건축행위를 허용하는지 현실에 뒤떨어진 '구법(舊法)'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음식점이나 체육시설, 다중이용시설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업종은 아예 경관지구내에 들어서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시민이 자주 접하는 시설을 허용해 편의 제공은 물론 토지소유자에게도 재산권 활용 범위를 넓혀줘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뿐이랴. 농업보호구역 내 건축 제한도 마찬가지다. 농지법을 적용받는 농업보호구역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하천 상류나 저수지, 연못 등의 주변을 묶는 규제다. 여기서도 수질 보호를 위해 건축 행위가 제한된다.

허용하는 시설이 많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음식점이나 제과점, 커피숍은 허용하지 않는다.

휴경지가 늘면서 농업용수 기능을 상실한 구역도 상당수 있지만, 법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무조건 옥죄기만 한다. 오히려 법으로 허용하는 일부 업종에서 수질 오염이 더 심각할 수 있는데 단순히 조리·제조를 한다는 이유로 건축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로 평가한다.

여러 가지 상황에 영향 받지 않고 모두에게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기 위해선 법은 반드시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국민 정서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은 구태의연한 구법이자 불필요한 규제다. 개혁 바람은 이러한 곳에서 일어야 한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에서 규제 개혁이 과감히 이뤄져야 한다.

중앙정부가 붙들고 있는 집행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방법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자체조례로 탄력적인 규제가 이뤄진다면 법과 현실 간 충돌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박재원 경제부장
박재원 정치행정부장

지방정부도 현실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규제는 조례를 과감히 뜯어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법은 물처럼 순리에 맞게 흘러가야 한다. 새해에는 법의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개혁을 위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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