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아시아에서는 관리 등용시 응시자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글쓰기(書)와 판단력(判) 평가로 사람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정량적으로 확인하고 몸가짐(身)과 언행(言)으로 됨됨이를 평가하여 관리를 선발한 것이다.

언행이 바르지 못하면 다른 요소의 평가 점수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관리로 등용되지 못하였다고 하니, 입신양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언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최근 모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다른 기관의 수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그는 수백 번 사과한 끝에 가까스로 장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사람의 평상시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장관같은 고위 관료뿐만 아니다. 최근 모 지방자치단체 7급 공무원에 합격한 어떤 이는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시기 인터넷에 짐승같은 본성을 드러내는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점이 확인되어 공무원 시험 합격이 아예 취소될 위기에 처해졌다고 한다.

비단 공직자뿐이랴. 요즈음은 연예인이나 일인 방송인들의 과거 무심코 한 언행이 '인성논란'이라는 주제로 화제가 되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혀 아래 도끼'라고 결국 남에게 상처를 줬던 그의 언행은 자신들을 향한 도끼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의 과다 투명성이 무조건 권장될 만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미 과잉하게 투명해져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현실에 걸맞는 인성(?)을 담은 언행이 필요할 뿐이다.

필자는 직업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굳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대화를 몇 번 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알 수 있다. 이는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본능처럼 당연한 것이다. 그의 언행을 통해 친구, 적, 위험하여 불가근불가원 하여야 할 사람이 자연스럽게 구별된다.

필자의 경험상 특히 위험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 보다 주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그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거짓이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가중 처벌되는 사항이다. 이런 부류는 인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위험한 사람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험담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을 설명하기에 앞서 누군가를 알고 있느냐며 유력한 지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지인의 명성에 기대어 이득을 보려는 습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유력인사인 지인과의 친분관계를 뽐내면서 누군가에게 접근해서 사기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사기의 고전이라고 불리울 만큼 흔한 일이다.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남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로 얽히게 만들어 곤란한 일을 겪게 만들기도 하니 역시 가까이 지내기 위험하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남의 흉을 이야기 하는 것이나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는 언행은 물론이고 남 칭찬조차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검정소 누렁소 중 어떤 소가 일을 잘하냐'는 황희 정승의 물음에 칭찬에서 소외된 다른 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귓속말로 대답하였다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다. 불교에서는 언행이 짓는 업보를 구업(口業)이라 하고, 인간의 죄업 중 가장 크다고 한다. '구업은 몸을 깎는 도구이며, 몸을 멸하는 칼날'이라고 할만큼 언행의 절제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시조집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작자미상의 시조 한 수 읊어본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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