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마을을 점령한 군인들의 군복색이 바뀐다. 이내 점령군에게 부역하는 이들이 평소 원한있던 사람을 끌어낸다. 뚝딱 단상이 만들어진다. 소란스러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선동적인 구호가 적혀있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확성기는 웅웅거리며 누군가의 처벌을 선동한다. 단상에 올려진 이는 영문도 모른 채 유죄를 선고받는다. 선고 즉시 형은 집행된다. 대개는 죽음이다.

소설에 묘사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민재판의 모습이다. 전후 사라진 것만 같았던 인민재판이 우리 사회에서 부활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인민재판이라는 괴물의 부활은 우리의 자유와 안정에 크게 해가 되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인민재판은 자유의 확산을 타고 왔다는 점이다.

어떤 물질이 자체적으로 또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하여 화학적 성질이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하는 현상을 화학반응이라고 한다. 이런 화학반응은 비단 과학영역에 국한 된 현상은 아니어서, 국민의 알권리의 폭발적 확장에 기여한 공이 있는 초고속 인터넷과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준 SNS나 토론의 자유의 첨병이었던 댓글기능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키면서 그 부산물로 역사속에서 잠자던 인민재판을 현실로 끌어냈다.

이 괴물의 부활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이들은 제도 정치권 사람들이다. 선전과 선동이 본질이 되어 버린 정치판의 누군가가 인터넷 포털 뉴스의 선전능력과 댓글이나 SNS의 선동 능력을 알아보았고,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자유의 증표에 마법주문을 걸어 인터넷 인민재판으로 부활시켰다. 인민재판은 더욱 강화된 익명성이라는 아이템을 추가 장착하고 한층 커진 위력을 가지고 부활하게 된 것이다.

괴물이 괴물인 까닭은 그 녀석이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데 있다. 인터넷 인민재판은 괴물의 정형적 서사를 벗어나지 않고 결국 제 맘대로 커져버렸다. 인민재판을 부활시킨 세력과 정권을 다투던 반대세력이 공세에 성공하였다. 성공한 그들 중 일부가 인민재판을 자신의 것으로 길들이고자 하였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나기도 하였다. 인민재판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마력을 지닌 골룸의 절대반지인 것 같다. 마이 프레셔스!

요즘 인민재판 내용을 들여다보면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콘텐츠 양 역시 많아져 넷플릭스와 경쟁할 정도다. 내용은 사실 그다지 국민의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이 아닌 누군가의 불편한 과거, 가족관계 같은 사생활 등이다. 대상이 된 사람의 잘잘못의 확인 따위는 중요치 않고 일단 죽여 놓고 본다.

재판의 내용과 과정은 더욱 버라이어티 해졌다. 법적으로 형사적으로나 민사적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른 사건에 변호사를 동원하여 인민재판대에 올린 이유가 단지 진지한 사과를 받기 위해서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전개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름의 결론은 정하고 환호한다.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는 로마시민의 환호를 보는 것 같다. 막장드라마의 반전에는 맥락 따위는 중요치 않다. 흥미로운 전개와 결과에 관람자는 환호할 뿐이다. 인민재판은 어남택 어남류를 외치면서 극중 커플상대를 정하는 것처럼 흥미위주다. 그런 흥미진진한 인민재판을 기획했다가 자신이 막장 현실의 주연으로 지목되어 몰락하는 반전도 적지 않다. 반전의 반전도 흔해진 만큼 결론도 예측불가인 경우도 많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막장 드라마가 진행되가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막장드라마 주인공은 촬영후 세트장에서 빠져나오면서 드라마틱한 허구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현실의 인물들이 드라마틱한 현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세트장이 아닌 세상을 등지는 일이다. 그런 일은 실제 종종 일어난다. 인터넷 포탈등에서 자정의 노력을 한다고 한다지만 크게 결실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있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원래 인민재판은 로마의 관리가 행한 형사사건의 유죄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그의 무죄를 다투기 위해서 민회의 다수의 의견을 묻는 절차에서 유래하였다. 이렇게 인간 개인의 오류 가능성을 집단적 이성으로 차단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가 근래에 이르러 집단적 문책·보복적 형벌의 원시적 복수행위로 변질된 것이다. 지금의 인터넷 인민재판이 집단이성을 통해 인간의 흠결을 보충했던 본모습을 되찾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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