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제천여고 수석교사 이임순

어릴 적 내 놀이터는 석교동시장(현재 육거리시장)이었다. 부모님이 사형제를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는 삶의 현장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에게 시장은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무색하게 배움의 터전이었고 놀이터였다. 순식간에 닭을 잡아 털을 뽑고 해체해 봉지에 담아주는 닭집은 원태네 가게이고, 온갖 반짝이는 양은그릇과 철물이 쌓여있는 곳은 태선이네 집이었다.

특히 그 중에 영주네 문짝 가게는 어린 나에게는 요술 단지 같은 곳이었다. 아침에 쌓아 둔 나무를 켜서 톱질하고 대패질을 해 저녁이면 문살을 맞춰 몇 개의 문짝을 만들어 내는 영주 아버지의 솜씨는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이면 턱을 괴고 앉아 한참씩 작업 모습을 보았다. 영주 아버지의 톱질이나 대패질 그리고 암수의 홈을 파서 문살을 맞추는 작업 모습은 그냥 설렁설렁, 내 눈에는 힘 안 들이고 하는 놀이였다.

환갑이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목공을 배우게 됐다. 손자에게 내 손으로 만든 장난감이라도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그깟 톱질, 대패질 쓱쓱하고 끌로 파서 만들면 하루에 서너 개라도 만들겠다는 치기였다. 하지만 나는 영주 아버지일 수가 없었다. 톱질해도 똑바로 줄 그은 대로 할 수가 없었고, 대패질해도 평탄한 면이 나오지 않고 들쑥날쑥했다.

제천여고 수석교사 이임순
제천여고 수석교사 이임순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 눈에는 놀이 같이 보이던 모습이 몇십 년의 내공의 학습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교직 경력이 많아질수록 내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들에게는 '놀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다른 교사들이 보기에 그저 어깨에 힘 빼고 사람 좋은 얼굴로 '교육'이라는 목공 소재를 갖고 '학생'이라는 결 좋은 문짝을 아침에 시작해 저녁에 만들어 내는 영주 아버지 같은 교육자가 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