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범욱 공사발전후원회 명예회장·(사)한국수필가연대 회장

보이지 않는 시공의 지침이 너무 빠르게 달아나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생명의 용솟음에 봄의 소리가 귀를 간질이지만 시도 때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로 4월을 더 잔인한 달로 만들고 있다. 나리 나리 '개나리'가 '미나리'가 되어 물씬한 봄 내음으로 전원교향곡이 되어 들려온다. 현지 시간 25일 미국 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미국 최대의 영화축재인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환호성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인 여배우 윤여정이 대망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었다.

1980년대 많은 한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며 미국이나 카나다가 신천지가 되어 한국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살기 힘들고 남북분단에 전쟁발발의 불안으로 도피성 이주도 많았다. 해외공관원이나 주재 상사파견 직원도 임기가 끝나면 귀임하지 않고 현지에 눌러앉았다. 자녀들의 학교문제에 생활고로 여자들이 앞장서 귀국에 등을 돌렸다. 20세기 초부터 하와이의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정착하기 시작한 고난과 설음의 이민사로 아무 곳이나 무성하게 자라는 미나리의 특성을 그린 영화다. 윤여정은 여기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으로 미국 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상에 이은 최고의 오스카상이다. 지난해 봉준호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한국인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확산되어가며 발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다. 1차산업 농사에 있는 그대로 자연에 순응하고 미나리를 키우며 대를 이어가는 삶의 현장! 바로 우리 집안의 진면목(眞面目)이다. 정미소와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의 대업을 막내동생이 이어받아 갈고 닦아 지키는 수성(守成)의 논리다. 지식인들은 너도나도 타국에 이민으로 떠나고 주변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도심권으로 향할 때 동생 부부는 일터로 나섰다. 농촌을 이해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배우자를 만난 것도 천우신조다. 차가 없었던 시절이라 노모를 모시고 우마차에 점심까지 싸들고 먼 거리 청주의 옥산면 천수천변 농토로 향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이가 드니 너도나도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한다. 추운 겨울이면 놀며 쌓아논 양식만 까먹던 시절로 외로운 장고 끝에 미나리가 낙점되며 뿌리를 내렸다.

미나리는 시골집의 수채나 시궁창 같은 도랑가 에서도 잘 생장하는 식물로 오염된 물을 정화시켜주니 생태계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이른 봄이면 논에서 크게 자라 미나리꽝이 된다. 대공으로 숨어드는 거머리가 나오니 모두들 놀라지만 지열에 지하수를 이용하는 밭미나리로 걱정도 팔자다. 무농약 유기농으로 생산된 작물로 농약을 사용하는 다른 농사에 비해 몇 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안전한 먹거리에 이른 봄이 성수기로 수요가 공급을 따르지 못하며 전량 고가에 수도권으로 출하된다. 사각사각한 맛과 향기가 봄을 알리는 알칼리성 식이섬유로 체내에서 항산화와 해독작용을 하니 간 기능을 개선해주며 피를 맑게 해준다.

이범욱 공군사관학교 발전후원회 명예회장
 이범욱 공사발전후원회 명예회장·(사)한국수필가연대 회장

지난 11일 영국에서 윤여정이 아카데미상을 수상 하며 '고상한척(snobbish)한다는 영국인들에게 우선 인정을 받아 영광이라'는 인사말도 화제다. 좀 살게 되었다고 콧대만 높아 잘난 체만 한다고 할까!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다. 뒤치다꺼리에 궂은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으로 왜? 일자리가 없다며 배부른 소리만 하는지 알 수 없는 우리 주변이다. 집사람은 종갓집 큰며느리로 고령의 나이에도 지난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동이 트면 미나리를 다듬고 잔일을 도와주기 위해 실체적 진실인 극한작업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윤여정이란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닌 그 이상'으로 상생의 존재감이 감개무량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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