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 년의 시간 이어진 '책읽기'의 비밀

백곡 김득신 특별전 전경
백곡 김득신 특별전 전경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기본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시대에 한발 한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끝내 이루고야만' 노력과 끈기의 지혜를 전해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증평군 독서왕 김득신문학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 오는 7월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백곡집(栢谷集)과 임인증광별시방목(壬寅增廣別試榜目)이 충북도 문화재로 지정예고 된 것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다. 4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백곡 김득신이 독서에 대한 열정, 학문에 대한 탐구자세, 멈추지 않는 노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감동과 울림을 만나봤다. / 편집자
 

효종 "당나라 詩에 견줘도 손색 없다" 극찬

조선시대 독서광으로 알려진 백곡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의 손자다. 아버지는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던 남봉 김치(金致)다. 백곡은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앓았던 천연두로 인해 10살이 되어서야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학동들의 필수서인 '사략(史略)'의 첫 장을 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읽지못해 외삼촌에게 차라리 공부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치는 김득신의 올곧은 성품이 평생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자질이라 여기고 "학문 성취가 늦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 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며 믿음과 포용으로 아들을 격려했다.

율리 등잔길 김득신 쉼터 동상

백곡은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수없이 책읽기를 반복했다. 그는 사기(史記) 열전(列傳)에 수록된 백이전(伯夷傳)을 11만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는 하루에 백번씩 읽어도 4년이 걸리는 분량이다. 그 결과 환갑을 앞둔 59세 나이에 과거에 합격 했으며, 많은 시를 남겨 '당대 최고 시인'으로 추앙 받았다. 그는 증평에서 태어났으며 사후 증평읍 율리 좌구산 자락에 묻혔다.

효종은 김득신의 시 '용호'를 읽고 "당나라 시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했으며, 택당 이식은 "백곡의 시가 당대 제일"이라고 극찬했다. 또 다산 정약용은 "문자와 책이 존재한 이후 종횡으로 수천 년과 삼만리를 뒤져봐도 부지런히 독서한 사람으로 김득신을 으뜸으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2019년 12월 24일 '김득신문학관' 개관

증평군 김득신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끝내 이룬 노력과 끈기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김득신은 자신의 묘비에
증평군 김득신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끝내 이룬 노력과 끈기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김득신은 자신의 묘비에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라고 썼다.

증평군은 2012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한 창조지역사업 공모에 도전하기 위해 증평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인 백곡 김득신의 문화콘텐츠화 사업에 나섰으나 근거자료가 부족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증평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청주에 있는 교과서 전문서점인 '유신상사'에서 수백권의 책을 읽으며 '김득신은 독서호야'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2013년 재도전해 지역발전위원회와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모한 '김득신 스토리텔링 농촌만들기' 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을 통해 3년간 총 6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매년 1억원은 하드웨어 구축에, 1억원은 소프트웨어 구축에 투자하며 김득신 묘가 있는 율리마을에 상징조형물 조성, 별천지공원 김득신 스토리텔링 벽화, 1박2일 김득신알기 캠프, 김득신 독서서당 운영, 만화책, 애니메이션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증평군이 자체 개발한 '독서광 김득신' 캐릭터
증평군이 자체 개발한 '독서광 김득신' 캐릭터

2018년부터는 책과 독서를 테마로 한 '독서광 김득신' 캐릭터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지역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 캐릭터인 책을 머리에 쓴 채 '책을 읽고 있는 김득신'은 물론 어사화 쓴 김득신, 레일바이크 타는 김득신, 하트 날리는 김득신, 그네 타는 김득신 등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증평군 홍보 마스코트로 거듭나고 있다.

증평군립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 분위기 조성에 힘쓴 증평군은 매년 북 페스티벌 개최, 책 읽는 지자체 대상을 수상하는 등 독서문화 진흥에 앞장서고 있으며, 김득신의 독서 정신과 문학을 계승·보전하기 위해 2019년 12월 24일 '독서왕 김득신문학관'을 개관해 백곡의 끝나지 않는 책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김득신의 책읽기

백곡 김득신이 평생 읽은 책의 편수를 기록한 독수기. 1만번 이상 읽은 책 36편을 열거해 놓았다.

지난 3월 충북도가 유형문화재로 지정예고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백곡집'은 후손들이 문집간행을 위해 편찬한 것으로, 용호(龍湖), 구정(龜亭), 전가(田家) 등 1천500여 편의 시와 180여 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는 7권 7책 필사 원고본이다. 이 책은 김득신의 학술활동 전반과 교유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충청지역의 명소를 유람하고 지은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 지역 역사문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독수기

특히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만번이상 읽은 36편을 기록한 '독수기(讀數記)'에는 '백이전', '노자전', '분왕'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유종원의 문장을 읽은 까닭은 정밀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제책', '주책'을 읽은 것은 기이하면서 힘이 차고, '능허대기', '제구양문'을 읽은 것은 담긴 뜻이 깊어서라고 밝히고 있어 그의 책읽기가 단순히 많은 양, 많은 횟수가 아니라 하나의 글도 허투루 보지않은 문인으로서의 자세를 엿보게 하고 있다.

김득신이 59세에 과거 급제한 기록을 담고 있는 임인증광별시방목(壬寅增廣別試榜目).
김득신이 59세에 과거 급제한 기록을 담고 있는 임인증광별시방목(壬寅增廣別試榜目).

이와 함께 충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예고된 '임인증광별시방목'은 1662년 임인년에 치러진 증광별시 문무과에 합격한 명단을 수록한 방목으로, 59세에 합격한 백곡의 생년, 字, 생원 급제 연도, 거주지, 가족관련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과거 실시 이유와 과정, 문과 합격자 명단, 무과 합격자 등이 실려있는 희귀본이다.

이 자료들은 김득신의 10대손 김명열 씨가 기증한 유물이다. 이와 함께 이번 특별전에서는 김득신이 1만번 이상 읽은 문장이 기록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전국책(戰國策)' 등을 비롯해 김득신이 서문을 지은 '소화시평(小華詩評)', '순오지(旬五志)' 등 유물 15건 35점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김득신이 수록된 초등 교과서
김득신이 수록된 초등 교과서

이번 특별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문을 쌓은 선비치고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고서 성취한 경우는 없다"는 김득신의 아둔한 듯 비범했던 삶의 족적을 통해 빨리 빨리 문화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쫓는 우리들에게 "당신이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기를, 조금 느릴지라도 끝내 이루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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