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은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Jazz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재즈 음악가이다. 1899년생인 그는 7살 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해서 17살에 프로 데뷔를 하게 된다.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영가와 블루스, 랙 타임 등에서 출발한 Jazz는 1900년대 초가 되면 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17년에는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라는 이름의 백인밴드가 세계 최초의 재즈 음반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딕시랜드는 원래 뉴올리언스에 있는 늪지대를 부르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재즈를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초기의 딕시랜드 재즈는 트럼펫, 트롬본 등 관악기 위주의 흥겨운 춤곡이었고 이후 30여 년 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 무렵 유행하던 스타일을 '스윙'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 듀크 엘링턴도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는데, '스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듀크 엘링턴의 본명은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Edward Kennedy Ellington)이다.

본래 듀크(Duke)라는 말은 영국의 왕위 계승서열 최상위층의 귀족을 말하는데, 우리말로는 '공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1930년대 '한 시의 점프'라는 곡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재즈 연주자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의 이름에서도 '카운트' 즉 '백작'이라는 명칭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본래 그의 이름은 윌리엄 제임스 베이시이다.

그렇다면 본명이 에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인 그는 어쩌다가 듀크 엘링턴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그 당시 대부분 다른 흑인들과는 다르게 항상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그에게 친구들이 영국의 귀족 같다는 의미로 'Duke'라고 별명처럼 불렀는데 1923년 그가 뉴욕에 진출하면서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엘링턴은 스윙(Swing)이라는 음악에 단순한 춤곡 이상의 어떤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평생 노력했던 인물이었는데, 음악 생활 50년 동안 약 6천여 곡을 창작하면서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세계 대중음악의 발전을 20년 정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던재즈라고도 부르는 비밥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스윙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1974년 5월 어느 따뜻한 봄날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그리고 2년 뒤, 천재 뮤지션 스티비 원더는 듀크 엘링턴에게 헌정하는 노래 'Sir Duke'를 발표하는데, 그 곡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음악은 세상을 담고 있지요/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평등한 기회도 함께 말이죠/ 우리 모두 노래하고, 춤추고, 손뼉을 치게 만들지요/ 음악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베이시, 밀러, 사치모 같은 몇몇 음악의 개척자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중에 최고는 듀크 선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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