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철이 든다는 건 수없는 담금질을 통해 저를 벼리어 가는 과정이다. 말없이 땅속에 누워 있는 그의 내력으로부터 이를 깨닫는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24호, 석장리 제철 유적지다. 바닥에 간직하고 있는 큰 의미가 무색하리만큼 그곳은 잡풀로 뒤덮여 있다. 그저 낮은 구릉 잡종지에 덩그러니 안내 표지판 하나가 겨우 이곳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구던 곳이다. 번성했던 삶의 현장에서 철 들어가는 과정을 더듬어 본다.

'1천500도 활활 타는 불 속에서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쇠/ 그때 비로소 세상이 바라는 형태로 몸을 내준다. /단단하여 제 혼자 잘난 줄 타협을 모르던 야생의 쇳조각은/ 불에 달궈지고 모루 위에서 쇠망치질을 당하며/ 서서히 저를 내려놓는 법을 알아간다./ 수없는 담금질과 뜨임을 통해 다소곳한 모습을 갖는다.//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불림과 풀림을 반복하면서 저를 벼리어 가는 일이다. /철들어 간다는 건, 온전한 인격체로 완성된다는,/ 가슴 떨리는 사람살이의 길이다./ 설렘이다. 자아의 완성이다.'

석장리, 돌실과 양푼바위 마을에 걸쳐 있는 야산 구릉지가 예사롭지 않다. 땅속에서 움틀움틀 그 옛날 거대 세력의 흔적이 고개를 들고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땅속에서도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철은 강력한 힘이다. 인류 문명을 빠르게 발전시킨 바로미터다. 철 생산은 고대국가를 형성하는데 있어 영토를 확장하고,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혁명을 불러왔다.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들어서 한반도에 벼농사가 시작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철제 농기구가 만들어졌다. 농기구를 이용하여 농업 생산력이 증대된 것은 물론이고, 철을 얻기 위한 채굴, 제련, 도구 제작 등 전문화된 노동력이 생겨났다. 사회문화의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에서 조사된 최초의 고대 철 생산 유적지가 덕산읍에 위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깊다. 새로운 문화, 혁신의 시작점이 이곳 석장리 철 유적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철기문화의 발달로 인해 사회의 조직화와 계급 분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으리라.

오늘날 덕산을 중심으로 충북혁신도시가 건설된 것은 어쩌면 시공간을 넘어 숙명적으로 그리된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에서 우연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의 맥이 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혁신도시에 일기 시작한 비약적인 대변혁의 바람, 그 시원은 백제 문화를 번성시킨 철기문화의 바람이 아닐까.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쇠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쇠를 달궈야 한다. 이글거리는 숯불에 들어가 보고 나서야 나긋나긋 저를 내준다. 수없는 망치질을 하여 몸의 형태를 바로 잡아간다. 한두 번에 끝나지 않는 고행이다. 뜨거운 쇳물과 주철장의 혼이 합일을 이뤄 수없는 메질과 담금질을 통해 하나의 철제품이 완성된다. 그 이치를 보면서 사람 살이를 생각해 본다. 쇠를 부리는 사람은 주철장이지만, 나를 부리는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

마음에 숫돌 하나 놓고 수시로 날을 벼리며 곱게 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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