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에서 생각나는 왕과 왕비들
왕릉에서 생각나는 왕과 왕비들
  • 중부매일
  • 승인 2021.05.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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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얼마 전,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후배들이 강남구 선릉역에 있는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으로 역사기행을 갔다.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고,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이다. 선정릉 입구 오른쪽에 중종(中宗)의 묘 정릉이 있다. 중종의 묘는 고양시 서삼릉에서 천장하였다.

성종은 의경세자와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의 둘째 아들로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그는 숙부 예종이 왕 위에 오른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의 명으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7년간 받았다. 그런데 나이 어린 장손 조카 제안대군은 왕의 기회를 놓친 후, 장녹수와 아쉬움을 달래다가 후일 장녹수를 연산군에게 보냈다. 성종은 사림정치의 기반을 조성하고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2명의 부인과 28명의 자녀가 있고 주요인물로 한명회가 있다. 주요여인으로는 어머니 인수대비, 공혜왕후(한씨), 폐비윤씨, 정현왕후(윤씨), 엉동, 소춘풍이 있고, 군주 중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특히 부인 폐비윤씨 때문 아들 연산군의 폭정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에서 왕비들이 파평윤씨가 많은데, 고려의 명문 가문 윤관장군의 후예들이다.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은 중종반정으로 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고, 38년간 왕위를 지켰고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2명의 아내와 20명의 자녀를 두었고, 단경왕후(치마바위 신씨), 장경왕후(윤씨, 인종의 생모), 문정왕후(윤씨, 명종의 생모)가 있다. 성종과 중종은 왕위계승의 불협화음 때문인지 괴로움을 이겨 내려고, 부인들도 많고 자식들도 많이 두었다.

조선시대 권력을 휘두르며 수렴청정한 대비 중 문정왕후, 정순왕후, 장희빈이 권력을 휘둘러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조선시대 또 다른 유명한 여인들은 장녹수(연산군), 정난정(윤원형의 처), 김개시(광해군) 등이 있고, 황진이, 매창, 홍랑 같은 아름다움과 멋을 겸비한 기생들도 있었다.

그동안 조선시대 왕릉을 많이 가보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수를 받으며, 왕과 왕비, 후궁 등과 어진 신하, 몰염치 신하, 나라를 구한 장군 등 영웅들에 대한 연구를 해보았다. 조선시대 사림파, 훈구파, 동인, 서인 등 붕당정치에 균형을 잡은 군주가 되기 어렵지만, 왕릉에 누운 왕과 왕비들을 보면 살아생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논어 자로 편에 윗사람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시행되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해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지도자가 되는 요소는 이성과 판단력이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마을학교에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다 보면, 우리나라나 중국, 유럽의 군주들 성군되기가 어렵다. 군주란 아첨하는 여인들과 간신들을 멀리하고, 나무보다 숲을 보고 직언을 하며 충성하는 신하가 많아야 한다. 민주화 시대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등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좋겠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큰 권력을 가져도 십 년을 가지 못하며 열흘이나 붉은 꽃이 없고, 권세와 부귀영화는 쉼 없이 지고 만다. 우리 모두 집안부터 잘 다스려야 하는 중요함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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