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빈센조 까사노의 건물, 세운상가
빈센조 까사노의 건물, 세운상가

"나의 목표는 이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드라마 빈센조의 첫 장면에서 한국계 이탈리아 마피아인 빈센조 까사노는 이렇게 한 마디 내뱉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빈센조는 건물(금가프라자) 내부에 숨겨져있는 막대한 양의 금괴를 몰래 빼내야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총수로 있는 바벨그룹은 금가프라자를 철거하고 그곳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려고 한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빈센조는 금가프라자 입주민들과 함께 '악은 악으로 맞선다.'는 신념으로 하나씩 바벨그룹을 무너뜨려 나가며 드라마는 진행된다.

금가프라자, 이 건물 어디서 많이 봤다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운상가였다. 세운상가는 공간사옥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세운상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세운상가가 지어지기 전, 종로에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 몰려든 이주민들이 종로 일대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창가도 늘어났다. 당시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권 아래, 경제개발계획 중이었고, 서울시 역시 재개발에 박차를 가해 서울일대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을 모두 재정비할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은 별명이 불도저였던만큼 추진력이 있었다. 김현옥 시장은 승승장구하고 있던 건축가 김수근에게 서울시 개발계획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한다. 내용은 즉슨, 서울의 중심인 종로와 퇴계로 일대를 폭 50m에 길이가 무려 1km인 건축물을 세운상가-현대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풍전호텔-신성상가-진양상가 순으로 총 8개의 건축물을 일렬로 길게 이을 계획이었다. 그 중 세운상가 설계를 김수근에게 맡겼다.

그러나 건축가 김수근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힘들다싶으면, 건축설계와 다르게 마음대로 시공해버린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그렇게 결국 공중통행로는 없어지고, 서로 건물끼리 연결해야 하는 동선은 죄다 끊겨버리고 말았다.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다분했던 건축이었기에 준공식은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서 '세상의 기운이 이곳에 다 모이라'며 리본을 끊었고, 세운상가는 대한민국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용산에 커다란 전자상가가 들어서 이곳에 있던 상인들이 그곳으로 죄다 이주해버려 이곳은 급격하게 슬럼화되었다. 시간은 흘러 2008년에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가 이곳은 역사적, 건축적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건물이라는 문화재청의 만류에 철거를 철회하고, 서울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세운상가를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거기다가 서울시는 예전 계획을 받아들여 세운상가와 연결되어야 했던 다른 상가와 공중보행이 가능하게 다리를 만들고, 청년 상인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예전보다는 밝은 모습으로 다시 완성했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아무리 군사정권시대에 권위를 앞세워 도시 중앙을 가로막았어도,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해 이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어 관광지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빈센조 까사노가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았다면, 건물을 무너뜨리는 생각은 좀 미뤄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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