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애경 수필가

아카시 향이 코끝에서 춤을 춘다. 5월에 찾아온 꽃소식이다. 오래도록 뵙지 못했던 K선생님과 식사 약속이 있는 날이다. 지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에도 코로나 핑계로 찾아뵙지 못했던 죄스러움에 어렵게 잡은 약속이다. 밥이야 누가 사면 어떠냐며 흔쾌히 받아 주셨다.

한번 다녀온 후로 눈도장을 찍어 놓았던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유명세를 탄 '맛집'답게 5월의 햇살 아래 잘 꾸며진 정원에서부터 오감을 자극했다. 코로나까지 겹쳐 삼시 세끼 해 먹어야 하는 집밥으로부터 모처럼 해방돼 산해진미를 마주하니 눈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잘 차려진 음식에 밀린 수다를 고명으로 얹어 가며 식사를 이어갔다. 코스 따라 나오는 요리에 눈을 뺏기며 먹다가 순간, 기억하고 있던 맛이 아님에 고개가 갸웃해졌다.

이상한 법칙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아무리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한두 번 이상 가면 처음 맛본 감동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성복처럼 획일화된 맛, 귀한 식재료라도 적절한 온기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밀리는 손님에 치여 기계적으로 접시를 내고 들이는 손길마저 식욕을 떨어뜨렸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먹으면서 왜 갑자기 집에 두고 온 김치찌개가 생각나는 걸까.

남편이 매번 맨밥에 김치 한 보시기만 있어도 집밥이 좋다고 할 때마다 외식을 피하기 위한 빈말이라고만 여겼다. 돌아보니 내게도 집밥은 그런 존재였다. 봄 이때쯤이면 갓 짜낸 들기름 아끼지 않고 조물조물 무친 산나물과 보글거리던 냉이 된장국. 특별한 레시피나 계량스푼 하나 없이 수십 년 아홉 식구를 위해 차려진 엄마의 밥상.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엄마의 밥은 그리움의 원천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평생을 보면 질릴법한데 평생을 먹어도 집밥을 질린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게 바로 집밥의 미스터리다. 1인 가구 젊은이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의 내용이 떠오른다. 집을 나와 좋은 건 엄마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일이고, 가장 슬픈 건 엄마의 집밥을 못 먹게 된 것이라는 응답자가 많았단다. 무심히 웃고 넘긴 이야기였는데 우리 집 딸들이 그 처지가 되었다. 유난히 입이 짧은 큰딸도, 해 주는 건 뭐든지 달게 먹던 작은 딸도 독립해 나갔다. 품에서 내어놓을 때의 상실감은 컸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임용지로 떠난 딸들의 독립은 아침밥 거르지 않고 해 먹인 엄마에게 준 최고의 밥값이다.

그렇게 나도 '집밥' 하면 떠오르는 그리운 이름이 되었다. 찬이 마땅찮은 날, 신김치 쫑쫑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아 김치볶음밥만 해줘도 엄지를 세워주는 가족들. 밥 위에 올려진 반숙의 계란프라이가 화룡점정이라며 인증샷까지 남긴다. 일주일 만에 온 딸들을 위해 고깃집이라도 갈라치면 "엄마밥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지체 없이 앞치마를 두르게 된다.

김애경 수필가
김애경 수필가

가족에게 집밥은 힘이다. 다 크도록 우리를 엮는 탯줄이다. 고급진 재료, 명품 접시,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이 아니면 어때. 마음을 읽어 음식의 온도를 맞춰 내는 '쓰담쓰담' '토닥토닥' 밥상 레시피. 이게 바로 집밥 미스터리에 대한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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