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현안마다 투사·조력자로 헌신한 '열정의 아이콘'

정종수 전 충주시사회단체연합회장
정종수 전 충주시사회단체연합회장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자신보다 남을 먼저 돌보면서 사는 일은 자신에 대한 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다.

그만큼 남을 위한 봉사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행하기 어렵다.

지난 2005년부터 16년 동안 (사)충주시사회단체연합회장을 맡았다가 최근 이임한 정종수(73) 전 회장은 평생 자신보다는 지역을 위해 봉사하면서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다.

지역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앞장서는 그는 말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실천하는 봉사자다.

정종수 전 회장은 군을 제대한 뒤 1973년부터 충주에서 사과마을로 유명한 동량면 조동리 장선마을에서 사과 농사를 지었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사과과수원에 나가 어둑어둑해질 무렵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농사일을 천직으로 삼으며 살았다.

현재는 사과농사를 접고 밭농사만 짓고 있지만 지금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밭으로 나간다.

그는 40년 전인 1981년 새마을에 입문하면서 사회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새마을운동에도 열심히 앞장서 1990년에 전국 최초로 동량면에 새마을분회를 설립하고 동량면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을 맡았다.

10년 뒤인 2000년에는 충주시 새마을지도자들의 대표격인 충주시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을 맡았다.

이어 4년 뒤인 2004년에는 충주시새마을 조직을 이끄는 충주시새마을회장을 맡아 임기 3년을 연임하면서 6년이나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충주시새마을회장을 맡자마자 당시 이원성 국회의원과 이원종 충북지사, 이시종 충주시장을 찾아다니면서 끈질기게 부탁해 2005년 금릉동에 있는 5층 규모의 충주시새마을회관 건립을 성사시켰다.

새마을회장을 맡으면서 그는 지역을 위한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워낙 열심히 일하다 보니 당시 충주에서는 '새마을하면 정종수, 정종수하면 새마을'로 통할 정도로 그와 새마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됐다.

정 전 회장은 "새마을은 나에게 봉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 조직"이라며 "그러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새마을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새마을회장을 맡고 있던 2005년에 충주지역 44개 사회단체가 모여 충주시사회단체연합회를 결성하게 된다.

현재는 44개 단체 가운데 관변단체를 배제시키고 순수 민간단체 31개로만 구성돼 있다.

그는 충주시사회단체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아 같은 해 10월 혁신도시 충주 유치를 간절히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을 모아 충주체육관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맨 앞에 나서 청주시 상당공원까지 삼보일배 출정에 나섰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한 삼보일배 대행진은 시민 한명이 100배를 소화하는 방식으로 연인원 3만여 명이 투입됐다.

정 전 회장은 "삼보일배에 나설 시기에 목디스크가 심해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은 상태였지만 수술을 미뤄놓고 삼보일배를 끝낸 뒤에 수술을 했다"며 "목디스크 상태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충주기업도시 유치를 위해 버스 50여 대에 2천여 명이 나눠 타고 서울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광화문 광장으로 올라가 지부상소를 올릴 당시에도 그는 삭발시위까지 벌이는 등 천신만고의 노력을 기울여 충주기업도시 선정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다소 무모한 투쟁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기업도시 유치를 위해 내 한몸 정도는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나섰다"며 "현재 잘 조성돼 있는 충주기업도시를 지나칠 때면 당시를 회상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소탈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충주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충주기네스에 기록돼 있다.

군인 시절에는 쌀 반가마니(40㎏)를 1시간 반이나 들고 있어 전국 군인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충북도민체전 모래가마니들기 대회에서도 30년 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힘이 장사다.

평소에는 그저 마음씨 좋고 인정 많은 이웃집 형님이나 아저씨인 그는 상황에 따라 물불을 가리지 않는 투사로 변한다.

제천지역 시민단체들이 충주호 명칭을 청풍호로 변경하자고 주장하면서 충주시와 심한 갈등을 빚어 월악대교에서 양측이 대치할 당시에는 정 전 회장이 맨 앞에 나서 자칫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의 적극적인 중재로 겨우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정 전 회장은 충주댐 물값 문제로 수자원공사와 충주시민들이 갈등을 겪게 되자 충주댐피해대책위원장을 맡아 충주권관리단은 물론, 대전에 있는 수자원공사 본사까지 찾아가 수자원공사의 충주지역 관광분야 투자를 유도했다.

이밖에도 문장대온천 개발 저지와 충북선 철도 달천구간 정상화 추진, 충주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충원교 철거 후 신축, 국립충주박물관 유치 등 지역의 쟁점이 되는 일마다 앞장서 크게 기여했다.

그는 충주지역의 고용과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직접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6월 충주지역 고용과 노동문제 극복을 위해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지역시민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정 전 회장은 당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모 회사의 사측 관계자와 노조측 관계자를 직접 만나 중재에 나섰고 위원들과 함께 울산에 있는 현대자동차를 방문해 충주지역 자동차부품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노사문제는 지역 경제와 지역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당사자만의 문제로만 국한시켜서는 안된다"며 "충주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민의 대표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지역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정 전 회장에게 주변사람들이 수시로 도의원이나 시의원 등 선출직에 나설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그는 철저히 고사한다.

정 전 회장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지방의회에 진출해 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단 한푼이라도 돈을 받는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 내 철학"이라며 "그저 내가 힘이 닿는데까지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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