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권택인 변호사

#1. 지록위마(指鹿爲馬)

진(秦)나라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사망하자 어린 황제를 내세워 승상이 되었다. 이후 황제를 업신여기며 그 위에 군림하며 권세를 휘둘렀다. 하루는 조고가 어린 황제를 농락하고자 여러 신하들 앞에서 황제에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였는데(指鹿爲馬), 그렇지 않다고 말한 신하는 조고로부터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그의 말에 반대하는 신하는 없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에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른다는 의미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얼마 전 행정사건의 당사자가 된 지인의 조력을 위해 모 위원회에 출석하였다. 위원장은 나이 지긋한 모대학 전직 교수였다. 필자는 귓속말로 의뢰인에게 조언을 하였는데 그 모습이 언짢았는지 필자에게 조언하지 말라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음 당해보는 황당한 심리진행이었다.

교수인 탓에 준사법적 판단 절차 진행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기에 잘 몰라서 무례를 범했을 수도 있으나, 국민으로부터 순차 위임받은 권한을 사건의 판단의 대상이 된 국민에게 억압적으로 행하는 그의 태도는 위원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임은 물론 시대착오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의뢰인의 일이 아니라 필자 본인의 일이었다면 그 위원장에게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었을 것이고, 갑질 위원장의 행실은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잘못을 따져 물으면 의뢰인의 사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생각되어 그 위원장의 시대착오적 심리진행을 질끈 눈감고 묵인하고 말았으니,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의 눈에 필자가 지록위마라며 전횡하던 조고 앞에서 동의를 보탠 비겁한 대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마음이 무거워 지기도 한다.

#2. 과하지욕(袴下之辱)

지록위마의 조고의 전횡은 이후에도 이어졌고 결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혼란의 와중에 조고는 좀 더 다루기 쉬워보이는 황제를 옹립하였다가 그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사필귀정의 몰락이다. 조고의 전횡으로 쇠락해진 진나라는 결국 망하고 서초패왕 항우가 이끄는 초(楚)와 후일 한고조가 된 유방이 이끄는 동쪽의 한(漢)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게 된다. 유방은 열세에도 불구하고 초를 무너뜨리고 한의 중국통일 대업을 완수한다.

문헌에 따르면 흙수저 출신 유방의 개인적 능력치는 금수저 출신에 엘리트 교육으로 성장했던 항우에 여러모로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방은 그를 보필하는 세 명의 조력자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이 순간의 치욕을 견디며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는 과하지욕 고사의 주인공인 한신이다.

과하지욕은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라는 뜻이다. 한신이 유방에 의해 발탁되기 전 고향에 은거하고 있을 당시 동네 불량배가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며 시비를 걸었는데, 한신은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한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때를 기다린 끝에 한고조 유방 군대의 사령관이 되어 한나라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조고처럼 굴던 모 위원장의 무례에 맞설 방법은 백가지는 되었을 것이다. 필자의 주된 무대는 법원이지 그 행정청 위원회가 아닌 까닭에 향후 있을지도 모를 사실상의 불이익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마음껏 법을 논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을 생각하며 과하지욕의 치욕을 견뎠다.

#3. 사필귀정(事必歸正)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지록위마의 조고는 몰락하고 과하지욕의 한신은 대업을 이뤘다. 어설피 권위에 기대어 권위의 근본인 국민을 업신여기는 자는 화를 뿌린대로 거둘 것이며, 누군가를 위해 순간의 굴욕을 견딘 이는 이후 더 단단해질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단기필마로 무엇을 이루고 어디까지 이를 수 있을지 때를 기다린다. 문득 생각난 일전의 해프닝을 고사에 비추어 복기해 본다. 마음이 다소 무거워 진다. 이럴 때 외우는 마법의 주문 '#내가_권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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