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놀고 궁리하다보니 마침내 '친구·이웃·마을' 탄생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김은진 대표와 박현선 전 대표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고민하는 학부모로 만나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김정미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김은진 대표와 박현선 전 대표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고민하는 학부모로 만나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문화를 위해 직접 전래놀이를 배워 놀이판을 열었다. 마을 리빙랩 사업에 참여, 어린이공원을 모험이 있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최근엔 마을에 유일한 중학교를 찾아 1학년들과 함께 주민참여예산제 사업을 공부하고 직접 제안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놀권리, 청소년 주권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펼치고 있는 대전 유성구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얘기다.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째.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부쩍 자라 중·고등학생이 됐다.

#놀이로 맺어진 이웃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위해 기꺼이 전래놀이를 배우고 익혀 함께 놀았다. /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제공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위해 기꺼이 전래놀이를 배우고 익혀 함께 놀았다. /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제공

시작은 단순했다. 마을 안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책 나눔, 반찬 나눔, 놀이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그러다 정해진 것이 아이들 스스로 놀 수 있는 건강한 놀이문화 만들기였다. 의지를 가진 초등 저학년 학부모 여럿이 2013년 1월 실행에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놀이터를 다녔다.

더 많은 아이를 품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학교 운동장. 맑을 때나 흐릴 때나 비가 올 때나 아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만 되면 약속처럼 금성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여름방학에는 밤 마실 재미가 쏠쏠했다. 오후 7시부터 진행하는 여름 밤 마실은 특별한 경험이 됐다. 일 년 열 달 놀아본 아이들은 겨울방학에도 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학교에 제안해 가정통신문으로 방학특강 접수를 받기에 이른다. 학부모들의 신청은 폭주했다.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의 활동가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더 없이 소중한 놀이선생님이 됐다.

직접 평생학습원을 찾아 전래놀이를 배우고, 배달강좌를 마을로 유치해 더 많은 엄마들이 놀이를 익혔다. 그리고 함께 놀았다.

마실의 자랑은 절기놀이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 되면 하기동 뒷산에서 진달래를 따다 직접 화전을 부쳤다.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화전을 부친다고 공지하면 족히 100명의 아이들이 몰렸다.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주민들은 십시일반 기금을 보태기도 했다.

마실의 활동을 지켜본 금성초등학교는 2013년부터 매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가을 전래놀이를 이틀 동안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와 올해는 쉬었지만 가을 전래놀이는 금성초의 전통이 됐다.

"우리 동네에는 마실이 있고, 놀이하는 날이 있다" 신성동 아이들은 자랑처럼 이런 얘기를 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마을에서 만난 놀이선생님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3월 삼짇날 화전을 부치고 5월 단오 때 널뛰기를 하고, 창포 삶은 물에 손을 씻고, 장명루 팔찌를 차 본 아이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놀이터 개선 리빙랩

마을계획을 통해 주요 의제를 도출한 주민들은 단기간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놀이터 개선 프로젝트를 정했다. /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제공
마을계획을 통해 주요 의제를 도출한 주민들은 단기간 할 수 있는 사업으로 놀이터 개선 프로젝트를 정했다. /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 제공

긍정적 변화는 어른들에게도 있었다. 2019년 마을 계획을 수립하면서 주민들은 마을의 자랑으로 마실을 꼽았다. 절기놀이를 할 때는 마을 축제가 따로 없었다. 단오축제 때는 200명이 모인 적도 있다. 수리취떡을 하고 쑥절편을 뽑고 수박을 잘라 함께 나눴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계획을 수립하면서 다양한 마을 활동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마을회의와 마을 총회를 통해 도출된 의제는 쓰레기, 주차문제, 도서관, 놀이터, 커뮤니티 공간 등이었다.

쓰레기와 주차문제가 우선 해결 과제였지만 단기간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동네 주막어린이공원의 놀이터를 개선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단조로운 기존 놀이터를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누구나 편하게 소통하고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어요."

김은진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아이들과 함께 놀다보니 개개인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주민들과 소통하다보니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교실에선 말썽꾸러기가 놀이터에선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되기도 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어른들을 만나고 삶터를 깊이 들여다보며 시나브로 마을에 안기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놀이공간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자발적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놀이 하는 능력도 커졌다. 단순히 놀이터 하나가 변한 것이 아니었다. 박현선 전 대표는 과정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놀이공간 개선 프로젝트는 좋은 마을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주민들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숲밧줄놀이모임도 만들어졌죠. 이미 역동적으로 변해 있었어요."

함께 꾼 꿈은 현실이 됐다. 놀이터 바닥은 친환경 보도블록으로, 정자가 있던 자리엔 파고라가 생겼다. 청소년을 위한 턱없는 무대도 조성됐다. 무엇보다 따로 또 같이 고민하고 참여하며 주민 사이 관계의 온도가 높아졌다.

어린아이의 놀 권리에서 시작된 관심은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고민으로 확장됐다.

신성동 성덕중학교에 주민참여예산 교육 및 활동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일 성덕중 1학년 교실에선 주민참여예산제 사업 제안을 위한 토론의 시간이 마련됐다. 참여 학생만 111명.

김은진 대표는 "아이들이 책임과 권리에 대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다"며 "제안을 적극 받아들여 준 성덕중학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근 신성동마을공동체 마실의 공간은 모두에게 열린 공유공간으로 거듭났다. 오디오와 영상도 기증 받아 설치했다. 박현선 전 대표는 마실의 공간이, 갈 곳 없는 청소년에게나 주민 모두에게 꿈꾸는 지하방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을 주체로 우뚝 선 성덕중 청소년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진행한 주민참여예산제 교육에는 111명의 성덕중 1학년 학생들이 참여, 113건의 사업을 제안했다. / 김정미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진행한 주민참여예산제 교육에는 111명의 성덕중 1학년 학생들이 참여, 113건의 사업을 제안했다. / 김정미

"자운대 근처에 놀이터와 도서관이 필요해요" "신성동에 있는 연구단지종합운동장은 시설물이 노후화됐어요" "밤길이 너무 어두워요. 바닥에 LED를 설치해주세요."

성덕중학교 학생들이 주민참여예산제 수업 이후 사업 제안서에 쓴 내용이다. 마실의 제안에 학교가 논의의 장을 펼치면서 111명이 쓴 113건의 주민참여예산제 사업 제안이 접수됐다.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이 교육현장을 개선하는데 앞장서고, 삶터인 마을의 변화도 고민하면서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성덕중학교 신의대 교장의 말이다. 성덕중 학생들에게 참여와 제안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대전형 혁신학교인 창의인재 씨앗학교를 4년 완성한 성덕중은 올해 성장학교 2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공간혁신학교에도 선정되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마실과의 협업은 학생들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2016년부터 성덕중학교에서는 상반기와 하반기 많게는 4회 전교생이 함께 하는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코로나19로 지난해는 쉬었지만 마실은 성덕중 아이들과 소통하며 청소년의회, 주민참여예산제, 누구나정상회담, 대전시소 등 시민참여 채널을 적극 소개하고 있다.

박현선 전 대표는 "발전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재미있게 잘 사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며 "주체적으로,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함께 즐겁게 사는 마을을 꿈꾼다"고 말했다.

김은진 대표는 관계의 회복, 이웃 찾기를 통해 안전하고 인정 넘치는 동네를 만들기 위한 궁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실은 2019년과 2020년 성덕중학교에 마을탐방, 마을여행 진로체험을 기획해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을 둘러본 아이들은 이웃을 발견하고 마을을 재발견했다.

김은진 대표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쌓은 놀이와 사회참여 경험이 청소년들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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