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운동회나 지역민을 위한 축제때 없으면 서운한 것 중 하나가 줄다리기다. 스포츠역사학자들은 밧줄을 당기는 것은 고대 의식과 의례로 이집트. 인도, 미얀마 등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줄다리기가 대중화된 것은 12세기 인도 기록으로 보고 있다. 인도의 대중화로 인해 유럽으로 확대된 '스포츠 줄다리기(tug of war)'를 만든 반면에,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는 2015년에 한국을 비롯한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4개국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시켰다.

유네스코에서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벼농사를 짓는(稻作) 문화권에서 널리 행해진 것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줄다리기를 통해 사회적 결속과 연대감을 도모하고 새로운 농경 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풍습으로 보았다. 두 팀으로 나누어 줄을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놀이인 줄다리기는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공동체의 풍요와 안위를 도모하는 데에 본질이 있다. 줄다리기를 통해 마을의 연장자들은 젊은이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연행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를 통해 결속과 단결을 강화한 것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우리에게 20세기 이전 대동놀이 중심의 존재를 찾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이 19세기말이나 20세기초 서양인들에 의한 기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줄다리기는 지역별로 민속놀이와 축제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국가무형문화재 2개와 시·도무형문화재 4개의 보존이 유네스코 공동등재의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처럼 지금부터 100여년전 모두가 열광했던 줄다리기는 일제초기 기록에는 몇 천명에서 몇 만명이 모일 정도였다고 한다.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줄다리기가 흥행한 이유는 환경과 밀접하다. 이 지역에는 벼농사가 주류였고,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노동력과 물의 확보가 가장 중요했다. 이렇다보니 많은 인원이 대동단결할 수 있는 놀이인 줄다리기를 통해 풍년 벼농사가 될 수 있는 순탄한 기후를 주술적으로 기원했던 것이 축제로 이어진 것이다. 아시아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서유럽을 돌며 바이킹 전사들과 무관하지 않다. 배가 진행 중이거나 전투 중에도 돛을 조정하기 위해 줄을 잡아 당겨야 하는 선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줄다리기가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16세기와 17세기 대중화를 거쳐 19세기말 경기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스포츠 줄다리기는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육상의 한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1920년 앤트워프올림픽까지 가장 주목 받는 종목이었다.

그러나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와 영국팀간의 갈등이 있었다. 미국팀선수들이 일반 스포츠신발을 신고 나온 반면, 영국팀 선수들은 스파이크가 박힌 신발을 신고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팀이 이에 대해 강한 항의를 했지만 당시 심판들은 규정에 없다는 이유와 대회집행부가 개최지 영국인이었던 관계로 이 항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팀이 경기를 포기하였고, 영국팀은 줄다리기 종목 3개의 금메달을 모두 독식했다. 이런 갈등이 다음 올림픽에도 지속되었다가 1920년 올림픽을 끝으로 결국 퇴출되었다. 하지만 스포츠 줄다리기는 올림픽에서 퇴출된 뒤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며, 최근에는 올림픽 부활을 꿈꾸고 있다. 2002년에는 올림픽 헌장 29조에 따라 IOC 인정종목으로 승인되어 도쿄올림픽부터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근대스포츠 역사와 함께 해 온 줄다리기는 아시아에서는 인류무형유산으로, 유럽에서는 스포츠로 가치를 만들고 있다. 단순한 놀이일지라도 그것을 잘 다듬어 표준화된 경기규칙을 만들어 보급한다면 훌륭한 스포츠가 될 수 있고, 무형유산은 축제와 교육으로 보존하고 전승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따라서 줄다리기는 스포츠와 인류무형유산이라는 양수레바퀴를 가진 전통스포츠이자 글로벌 스포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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