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지지 않은 가해-피해자 분리… 4개월 지옥속에 살아

'계부 성범죄 사건' 피해 여중생 아버지 A씨가 지난 18일 청주시 청원구의 한 공원에서 성범죄 사건 발생부터 검찰 기소까지의 과정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신동빈
'계부 성범죄 사건' 피해 여중생 아버지 A씨가 지난 18일 청주시 청원구의 한 공원에서 성범죄 사건 발생부터 검찰 기소까지의 과정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떨어진 아이가 몇 명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던진 질문에 '2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여중생 2명 중 1명이 자신의 딸임을 직감한 A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내 딸이... 어떻게..." 뒤늦게 현장을 찾은 계부 Q씨 역시 딸을 잃은 슬픔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A씨는 분노가 치밀었다. 당장 일어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A씨는 Q씨의 눈물이 꽃다운 여중생 두 명을 죽음으로 내몬 성범죄를 감추기 위한 연극임을 알고 있었다.

Q씨 성범죄 피해 여중생 아버지인 A씨는 지난 18일 무거운 마음으로 중부매일 취재진 앞에 섰다. 그간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흔들고 싶지 않다'며 사건에 대해 침묵한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그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청주지검은 이날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간) 혐의 등으로 Q씨를 기소했다.

"구속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그 절망 속에 우리 딸과 (Q씨의) 의붓딸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A씨는 지난 2월 1일 자신의 딸이 Q씨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게 됐다. 사건 발생 보름여가 지난 시점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가장으로서 마음을 다잡았다. 절차에 맞게 고소장을 접수하고, 피해자 조사도 성실히 받았다. 또 딸의 안정을 위해 정신과 상담도 꾸준히 다녔다. 그런데 수사는 이상하게 더디고 조심스러웠다. 하루 이틀이면 될 것 같았던 Q씨의 구속은 미뤄졌다. 

"수사 초기 우리 딸은 처음부터 성범죄 피해를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Q씨에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이 사건은 Q씨와 함께 사는 의붓딸도 피해자로 지목된 상황이었습니다. 더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가 필요했던 거죠. 하지만 현실은 지옥이었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더딘 경찰 수사, 미온적인 학교의 대응에 고심하던 A씨는 설날을 앞두고 급하게 전셋집을 구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Q씨 의붓딸과의 접촉이라도 피해보고자 한 선택이다. 의붓딸을 보면 자연스레 Q씨가 연상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딸에게 전학가자고 제안했어요. 그러자 제 딸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떠나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앞서 '성범죄 피해는 절대 너의 잘못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 함께 이겨내자'며 딸을 안정시켰던 저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학이라는 물리적인 분리조치가 딸이 겪고 있는 불안감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게 우리 딸이랑 의붓딸 이잖아요. 전학을 간 이후에도 둘이 만났나 봐요. 거기서 Q씨와 아직도 한 집에 사는 의붓딸의 고통을 전해 들었겠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친구의 모습, 그리고 수개월째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을 바라보며 절망했을 겁니다."

결국 사법기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두 여중생은 스스로 범죄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이들은 지난달 12일 청주시 청원구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제 딸과 의붓딸이 세상을 떠났지만,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습니다. 그 덕에 Q씨는 의붓딸 장례식장에서 의붓딸 친구들을 챙기며 상주노릇을 했죠. 의붓딸은 죽어서까지 Q씨와 분리되지 못한 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절차를 운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 딸, 그리고 의붓딸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제도에 허점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A씨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현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여중생의 죽음, 우리나라 성범죄 피해 대응 시스템 상 정말 막을 수 없는 죽음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딸은 그렇다 쳐도 성범죄 가해자가 있는 지옥에 밀어 넣고 수개월을 더 지내게 한 것은 이 시대의 어른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번 기회에 제도를 손보지 못하면 우리 딸, 의붓딸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또 일어날 겁니다."

Q씨 성범죄 사건 관련 '두 명의 중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 계부를 엄중히 수사하여 처벌해 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최근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겼다. A씨는 청와대가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