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기자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나 사실 등을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대중은 이런 미디어를 가감 없이 신뢰하고 그에 대해 나름 해석한다. 하지만 이 명제가 용인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툭하면 사실 등이 왜곡되어 전달되고, 대중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이성보다 감정이, 공공성보다 개인적 이해 관심이 앞서고 부탁, 지시, 강요, 압력 등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거울을 만들고 보는 셈이다.

머릿속에 동거하는 개 세 마리가 이 문제의 근원이다. 이 개들은 품종과 성질이 각각 다르다. 어느 때는 이 세 마리를 잘 활용하지만, 어느 때는 부당하게 혹은 스스로 지배를 받기도 한다.

개 세 마리는 '편견(偏見)'과 '선입견(先入見)' 그리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품종'이다. 한자어 '볼 견(見)'과 '개 견(犬)'이 뜻은 다르지만 같은 소리라는 점에 착안해 지어낸 억지춘향식 비유다. 그저 웃어넘길 것이 아닌 곰곰이 생각하면 특히 기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편견이라는 개'는 모든 동물과 사물에 대해 이유 없이 부정적이거나 그릇된 태도를 보인다. 제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으르렁거리며 덤벼들고 본다. 후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시(斜視) 눈을 뜨고 보니 제대로 볼 것이 없다. 시선이 기울어졌으니 사고도 올바르지 못하다. 늘 삐딱하고 공정하지 못하다. 남의 밥이 커 보여 남의 것에 눈독을 들인다. 집을 지킨다고 하지만 한밤중에 바람 소리만 들어도 도둑이 들어오는 줄 알고 무조건 지져대 온 동네 친구와 사람의 단잠을 뺏는다. 이 개는 독선적이고 교만하기 짝이 없다. 자기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골에서 방목하는 똥개다. 영어사용국에선 이 개를 '바이어스(Bias)'라 부른다.

'선입견이라는 개'는 다른 개들의 생각이나 판단을 따른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거나 못한다. 동물이나 현상 등을 만날 때 직접 판단해서 대응하지 못한다. 어미 개 등 먼저 태어난 개들이 하거나 했던 행동을 답습한다. 특히 주인이 시킨 훈련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시쳇말로 '안전빵'이지만 먹거리 등 무엇하나 선점하지 못한다. 눈치가 고단수여서 언젠가는 꼬리가 잡히는 무임승차를 즐긴다. '똥고집(고정관념)'이란 별명을 가진다. 사냥개나 마약 탐지견 등이 전형이다. 영어사용국에서는 이 개를 '프레쥬디스(Prejudice)',혹은 '스테레오타이프(Stereotype)'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백문불여일견이란 개'다. 개 가운데 가장 영리한 개다. 위 두 마리 개는 출생 근원이 없지만, 이 개는 출생 근원이 명확하다. 한마디로 혈통이 있다. 중국 한나라 선제 때 태어났다. 당시 오랑캐가 침입해 한나라 조정은 장수 선출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70대 늙은 장수가 모수자천(毛遂自薦)했지만, 노령이란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말 한마디로 이를 일축하고 황제의 허락을 받았다.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봄이 낫습니다(百聞不如一見). 신이 직접 달려가서 상황을 살핀 다음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여기서 '백문불여일견이란 개'가 태어났다. 이 개는 절대 남의 말이나 떠도는 정보를 확인 없이 믿지 않는다. 눈으로 보거나 몸소 체험하지 않으면 어떤 것에도 생각이나 행동이 휘말리지 않는다. 사물이나 현상 판단이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기존 판단이나 행동기준을 무시하지 않지만 심사숙고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영어사용국에서 이 개의 이름은 좀 길다. '씨잉 이스 빌리빙(Seeing is believing)'이다.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마음의 필터는 개 종류별로 다르다. '편견이라는 개'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녹슬고 파손되었다. '선입견이라는 개'는 제 판단 기준이 아닌 남의 것이라 주체 의지가 결여하다. 이 두 마리 개의 마음의 필터는 오랜 경험과 기간에 축적되어 자칫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오류를 범하기 일쑤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개'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만든 필터여서 사물 판단이 비교적 정확하고 적합하다. 진위를 잘 고른다는 얘기다. 설령 그 판단에 오류가 발생해도 후회는 없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편견이란 개'와 '선입견이란 개'는 잡종이지만, '백문불여일견이란 개'는 족보가 있다. 기자 머릿속 개 세 마리는 늘 끝장을 모른 채 싸우기 일쑤다. 정론직필(正論直筆)에 위협을 가한다. '편견과 선입견이란 개'는 XX집으로 보내고 '백문불여일견이란 개'는 반려견으로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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