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수년 전 고위공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꾼이 된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다. 퇴임과 동시 작은 트럭 한 대를 사는 걸 시작으로 부지런을 떨며 밭농사는 물론 벌을 치며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집 주위에는 수십여 종의 야생화를 심어 꽃을 피우고 일일이 이름과 특성을 꼼꼼히 적고 사진을 찍어 동창 단체 카톡방에 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엊그제 뜻밖의 사연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친구들 잘있었나. 벌써 망종을 지나 하지가 가까워오네 그려. 지금 시골은 모가 땅내를 맡아 한창 푸르르고 고구마, 고추싹도 제법 실하게 올라오고 있다네. 씨붙임이야 끝났다지만 바쁜 건 여전하지. 그래도 빠른 건 세월인가 보네 우리가 모두 고희를 넘고 올 해도 벌써 한 해의 절반을 돌았으니. 친구들도 알다시피 우리 농막 벌통 사이 중간에 색깔이 노란 '황금싸리나무'가 있지 않은가? 그 나뭇가지에 내가 알기로는 '붉은머리 오목눈이'라는 아주 작은 새가 둥지를 틀기 시작하더니 제법 그럴싸하게 집을 지었지 뭔가. 너비가 5㎝도 안되는.

며칠 전 궁금해서 새집을 들여다 보니 아주 예쁘게 생긴 포르스름한 알 세 개와 훨씬 큰 알 하나가 있더구먼. 나는 꽤나 궁금했지 그 작은 새가 어떻게 이렇게 큰 알을 낳았을까 하고 말이야. 그러나 곧 그 궁금증이 풀렸지. 며칠전 부터 우리 농막 주위를 맴돌며 오목눈이가 집 짓는 거동을 살펴보던 뻐꾸기란 놈이 생각났지. 그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기억이 떠올랐지 뭔가. 뻐꾸기는 집을 지을 줄도, 새끼를 키울 줄도 모른다고 하던 얘기 말일세. 그러니까 가까이서 지켜보다가 오목눈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오목눈이 집에 들어가 뻐꾸기란 놈이 알을 하나 낳고는 시치미를 뗀 셈이지, 그리고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주위를 맴돌며 목청껏 '뻐꾹 뻐꾹'울어대는 게 아닌가.

오늘 아침 궁금해서 슬그머니 새집을 들여다 보니 아직 부화가 되지 않아 알 네 개가 그대로 있네 그려. 방영 내용대로라면 이제 며칠 후 동시에 알이 부화되던가 아니면 뻐꾸기 새끼가 먼저 태어나 오목눈이 새끼 모두를 하나씩 등에 업어 밖으로 떨어뜨리겠지. 오목눈이는 그것도 모르고 뻐꾸기 새끼가 제 새끼인줄 알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키우고, 또 그 모습을 어미 뻐꾸기는 지척에서 지켜 보겠지. 종족보존을 위한 뻐꾸기의 선택을 어찌 생각하시나 시인 친구?'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나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모든 게 자연의 이치련가, 생태계의 법칙일까? 오목눈이의 숙명같은 설움을 측량할 수 없는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연초부터 주택정책이 화두가 되어 아직도 그 파장이 지속되고 있는데 서양 격언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고 했다. 어쩔거나! 분별없이 일찍 일어나 잡아 먹히는 벌레는 되지 말아야겠지…. 친구! 무수막에도 지금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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