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전 고교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몇몇이 있었다. 우리들의 화제의 일 순위는 물어볼 것도 없이 건강문제였다. 간간히 친구들중에 누구는 벌써 저 세상으로 갔느니 또 누구는 건강 때문에 못나왔느니 하며 저마다의 친구 소식을 전한다.

이렇게 담소를 나눈후 어느 친구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겠다며 입을 연다. 초등학교 4학년 손자가 할머니한테 자기 생일날 할머니한테 '저녁때 친구들을 데리고 올테니 생파와 생선을 꼭 부탁해요'하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더란다. 그래서 할머니는 생파와 생선을 잔뜩 사서 정성껏 생일상을 차려놓았다. 그런데 상을 받은 손자 녀석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식사후 손자가 살며시 오더니 '할머니, 친구들에게 줄 생일선물은 어디있어요? 답례를 해야 하는데'라며 선물을 달랜다. 할머니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당황한 나머지 얼른 방으로 가서 친구들 숫자만큼 작은 용돈을 봉투에 넣어 겨우 어려운 순간을 모면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다 가고 난후 할머니가 '애야, 진작 너가 생일선물을 준비해달라고 했으면 이 할머니가 준비했지?'라고 하니 손자녀석은 '아니, 아침에 생파와 생선을 부탁드렸잖아요?'라고 되려 성을 낸다. '그게 뭔데?'라는 대꾸에 '생파는 생일파티고 생선은 생일선물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그제야 할머니는 '미안해, 할머니는 몰랐어'하며 손자녀석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을 저미어 오게한다. 의사소통은 둘 이상이 언어, 비언어 등의 수단을 통해 의견, 감정, 정보를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대간, 시대 변화에 걸맞는 배움에 동행해야 한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는 손주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들과 친해지고 싶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내 손주가 어떤 말들을 쓰고 있으며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기 쉽다. 모르면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는 손주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도 된다. 손주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마치 선생님이 된 것처럼 좋아하면서 가르쳐 주고 나아가 자신들과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유대감을 갖게 된다.

아울러 그들의 언어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왜 좋은 한글 놔두고 그 따위 말들을 쓰느냐'는 말들을 한다면 더 이상 손주들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손주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유행하는 언어라고 해서 모두 좋은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손주들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튀어나올때는 처음듣는 말이네, 무슨뜻이니? 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뜻을 모른다고 한다면 우선 알게 해야 한다. 이럴때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배움은 끝이 없고 인생에서 늘 핵심이다. 특히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전환기에는 더욱 실감한다. 평생 지속적인 배움은 세대간의 소통을 넘어 우리자신의 성장과 영혼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가 전한 이야기가 자꾸 웃음을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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