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괴산의 폐교 하나가 이색적으로 개조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해암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괴산 청안면 장암리에 있는 폐교인데 장암을 드러내는 동시에 장암의 어감이 무거워 그것을 푼다는 의미에서 해(解)자로 대체해 해암 캠퍼스라고 이름 지었다. 협동조합의 이름이 머금듯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 선생이 지은 임원경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실천하는 것을 취지로 한 협동조합 하의 학교이다.

며칠 전에 개교식도 했다. 개교사를 쓰다보니 생태와 세계에 대해 필자가 평소에 생각하는 내용들도 조금이나마 담기게 되었다. 공유해도 좋을듯해 이번의 칼럼 내용으로 삼으려 한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이 먼 곳까지 귀한 발걸음 해 주셔서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들도 실은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연인지 하늘의 별똥별의 유혹에 넘어간 건지 이곳 괴산 청안면 장암리의 장암초 폐교에 어우러진 꽃에 반한 건지 말입니다. 아니 이곳엔 꽃과 돌, 흙, 새벽의 새소리와 깊은 밤하늘의 밝은 별들이 미리 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은은히 존재해 왔습니다. 지난 삼개월 동안 저희들은 삽과 호미, 페인트 붓과 청소기, 각종 도구들을 몸에 달고 다니며 오래된 폐교의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치웠습니다. 낡은 못에 찔리기도 했고 녹슨 쇳조각에 머리를 부딪혀 병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임원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배를 만들어 출항시킨지 4년째입니다. 저희 조합원과 관계자들은 임원경제지의 저자 풍석 서유구 선생이 평생에 걸쳐 남기신 귀한 콘텐츠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 재조명하며 가치있는 실천을 하려 애쓰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세상은 정말 많은 것들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환경, 생태 등 불안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이곳 해암 캠퍼스를 생태체험단지로 꾸며나가려 합니다. 작게는 생업에 지친 사람들의 힐링 정원이 되고 크게는 생태가 위협받는 현실에서 생태의 아름다운 복원을 통해 자연과 순환, 가치의 미덕을 향유케 하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 조합이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를 모토로 하는만큼 그 책 안의 다양한 주제들을 콘텐츠로 한 특별 학교를 운영해나갈 것입니다. 서유구 선생의 필생의 작품인 임원경제지는 땅, 꽃, 작물, 나무, 길쌈, 어업, 음식, 집짓기 및 일상 도구들 등 모두 16가지 주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리지는 그 첫 권으로 땅을 필두로 물 관리, 곡식, 농기구 등등을 다룹니다. 오늘 개강하는 본리지 학교는 200 년전 쯤에 쓰여진 그 전통 콘텐츠를 기반으로 현대에 유용하도록 업그레이딩한 차원입니다. 저희는 청주 옥산 소로리에서 논밭을 이만평까지 빌려 토종벼와 토종작물들을 재배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바탕 하에 학교 운동장의 일부를 논으로 개간해 토종벼들을 심을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이 학교의 정원 속에 한쪽엔 특이한 논이 조성되고 밭엔 이미 백 종 남짓의 작물들이 심겨 있습니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이런 체험과 배경 속에 본리지의 번역자인 정명현 소장님의 강의를 첫단추로 본리지 학교, 향후 점점 확장시켜 16개의 주제 모두를 커리큘럼화 해 나갈 예정입니다. 생태, 환경 등 전방위로 위협 받고 전통의 얼과 문화는 상실되어 정신과 물질의 불일치 속에 공동체의 향수가 무너지고 건조한 삶이 지속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의미 있는 걸음을 해나갈 것입니다. 온고지신의 하나로 봐도 되겠네요.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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