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요즘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언이 있다, '들여다보다'. "경찰은 미제사건의 국민적 관심을 확산시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이들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미제사건을 한 점 의혹 없이 주도면밀하게 파헤치겠다는 강도 높은 의지의 언표(言表)이다.

그냥 봐도 될 것을 왜 굳이 들여다보는 것일까?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은 '들여다보다'를 '가까이서 자세히 살핀다.' 등으로 정의한다. 밖(위)에서 안(아래)으로 머리를 숙여 보는 자세로 보이지 않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사물을 확실하고 자세하게 살펴보는 행위다. '보다'는 '눈으로 사물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안다' 등을 뜻한다. 전자는 사건이나 상황 등 (비)물질을 겉만이 아닌 속성까지 살펴보는 행위다. 후자는 망막에 맺힌 사물의 피사체를 인지하는 수준이다. 후자는 피사체가 그림자에 불과해 피사체의 원형을 드러낼 수 없다. 전자는 후자에 '깊이, 자세하게, 꼼꼼하게, 한참을' 등의 의미를 추가한다.

'들여다보다'는 '시각(視角)'이다. 시각은 각도, 관점에 맞춰 사물을 관찰 파악하는 자세다. 사물만이 아닌 관점에 따라 사물 속의 감춰진 무엇까지 파악함을 함축한다. 사물의 내면을 꿰뚫어 본다. 시각의 조건은 육안(肉眼)과 심안(心眼)의 일체다. 시각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시각은 들여다봄이다.

시각의 '시(視)'는 '示(시)'와 '見(견)'의 합성어로 '자세히 살펴보다.'라는 뜻이다. '示'는 제천(祭天) 때 제물을 진설하는 돌 제단이다. 인간은 제천 때 흉화(凶禍) 대신 길복(吉福)의 현현(顯現)을 기원한다. 길복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비물질이다. 여기서 '示'는 '보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제사 때 조상신을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본다. '示'는 심안으로만 가능하다.

'見'은 '目(눈)'과 '어진 사람'을 뜻하는 글자의 합성어다. 사물을 보는 어진 사람의 맨눈을 강조해 만든 글자다. 눈으로 사물을 가까이서 직접 봄이다. '見'은 사물의 외면을 본다. '見'은 사람(눈)은 사물 등과 접촉하며 이뤄지는 의사소통도 의미한다. 입(말)으로 전달할 수 없는 메시지를 눈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見'은 육안으로 사물의 겉모습을 본다.

김동우 논설위원
김동우 논설위원

시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똥인지 된장인지를 알기 위해 그중 하나를 먹어야 하는 역겨움을 감수해야 한다. 시각 능력자는 들여다보기만 해도 역겨움을 피한다. 하지만 이 역겨움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참 많다. 권력에 눈멀어 마음마저 고장 난 사람 말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