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동빈 사회경제부 차장

"재심의 기회를 준 우리나라에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감사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군복을 벗은 Q씨. 그는 42년 만에 다시 선 법정에서 원망이 아닌 감사의 인사로 재심의 소회를 밝혔다.

곧은 성품과 타고난 강직함은 그를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소령의 자리까지 올렸다. 그러나 타협을 몰랐던 그의 성격은 누군가의 질투 대상이 됐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원인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계엄령이 내려진 1979년 11월은 누구나 어디론가 잡혀갈 수 있는 삼엄한 시기였다. Q씨 역시 누군가의 공작으로 보안대에 끌려가 불명예 전역을 했다. 훗날 Q씨는 '우리나라 일부 단체에 북한 공작금이 투입됐다'는 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고 추측했다.

이런 Q씨가 재심이라는 절차를 밟은 것은 주변 지인들이 준 용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뀌었으니 이제는 말해도 된다'는 권유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당시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Q씨에게 "제대로 재판기록도 보지 못하고, 제대로 절차도 지켜지지 않은 채 재판이 이뤄졌다"고 고백했다. 그러곤 "필요하다면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월 22일 청주지법 형사2단독 이동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 재판은 싱겁게 끝났다. 사건의 쟁점은 이미 판가름난 듯 판사는 "재심이유를 바탕으로 판단하겠다"는 짧은 말로 가름했다. 이에 검찰은 전과 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신동빈 사회부 기자
신동빈 사회부 기자

재판장을 나선 Q씨는 억울함을 벗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결론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선고공판까지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반세기 가까이 짊어진 Q씨의 한을 사법부가 풀어줘야 한다. 백발의 노병에게 상식에 맞는 선고로 정의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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