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결론부터 말하자. 지금과 같이 국민을 옥죄는 엄격한 K방역 방식이 과연 옳은가. 만일 옳다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예컨대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계속하면서 끝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영원히 이런 방식으로 갈 것인가. 인간의 기본권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거의 봉쇄되고 있고 개인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방식이 지속가능한 방식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가 충분히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마스크는 당연히 착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쓰지 않아도 될 만한 상황에서도 남의 시선이 두려워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다. 나 홀로 산책을 하거나 야외 운동을 하는데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힐끗힐끗 눈치를 준다. 심지어 마스크를 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정도면 '이제 숨 좀 쉬고 살자'라는 외침이 나올 만도 하다. 코로나로 통제된 상황을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미국으로 간다고 했던 전 외교부장관의 배우자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모두가 비난했지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 사회보다는 미국이 훨씬 자유롭다는 의미다.

강력한 통제의 대가로 건강을 챙기느냐, 덜 강제적이고 덜 엄격하지만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용은 크게 달라진다. 현재 우리의 방역정책은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과 함께 지나칠 정도로 인간의 기본권과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은 검사결과 음성이 나와도 14일간 강제격리를 해야 한다.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정도로 심한 방역정책을 펴는 것은 시민들의 불편함을 넘어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필자가 과거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위험요소와 특정 정치적 목적이 결합되었을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한병선, 과장된 위험은 민주주의를 침식시킨다). 사실이 그렇다. 목숨이 위태롭고 건강이 우선이라는 '바이오보안(동물이나 식물의 전염병 확산을 막는 것)' 논리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무기가 된다. 전쟁과 같은 돌발적 예측 불가능한 급박한 상황이라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또 다른 문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의 문제다. 위험요소가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만큼 이 역시 중요한 문제다. 인류 역사는 민주주의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흘린 피의 대가라는 점에서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런 이유로 민주와 인권은 인류 보편가치의 최고봉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라는 위험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이 침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험요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위험을 지렛대삼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민주주의를 침식시킨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아감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코로나 통제 상황은 인간권리에 대한 헌법적 보장이 정지된 '예외상태(Stato di Eccezione)'다. 이런 상태에 존재하는 사람은 '벌거벗은 삶(Vita Nuda)'이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목적으로 바이마르 헌법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고 12년 동안예외상태로 지속시킨 때와 비슷하다. 우리는 현재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어느 순간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위에 독재 권력이 싹트는 것을 방관할 수도 있다. 매순간 정부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공허한 이곳에서 개인은 얼굴 없는 이름으로 타인들과 단절된 채 일상생활하게 영위하게 된다(조르조 아감벤, 얼굴 없는 인간).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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