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집이던 사람이든 오래 쓰다 보면 망가지고 부서지고 닳아 없어진다. 오래된 아파트나 낡고 불편한 주택의 골조는 그대로 두고 새롭게 편리하게 고쳐 디자인을 꾸미는 리 모델링이 유행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실내 분위기는 기분을 업 시키고 주거 공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분명하다. 새 아파트에 입주 해 십여 년이 지나면 여기 저기 고쳐야 할 곳이 하나 둘 돈 달라 손을 내민다. 깜빡거리는 형광등은 물론 빛바랜 벽지, 변기의 물 내림 장치를 갈아줘야 하는 등 구석구석 손 볼 곳이 여러 곳이다. 최근 우리 집도 형광등을 LED등으로 교체 하고나니 훨씬 밝아져 새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기세도 절약된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새것의 유혹과 매력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고 빠져들게 한다. 비단 집뿐 아니라 자동차, 가전, 가구, 생필품 등 우리 몸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수정 같이 맑은 갓난아기의 눈과 흐릿하고 희끄무레한 노인의 눈빛이 비교될 수 있을까? 보드랍고 통통한 갓난아기의 손과 발, 별빛이 보이는 반짝이는 눈동자, 새순이 올라오는 나뭇가지, 흙을 뚫고 삐죽 올라오는 여린 새싹. 어린 것들은 보는 이의 눈길뿐 아니라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주름진 얼굴과 거칠어진 손, 빛 잃은 눈동자, 바짝 말라 퇴색해져 두껍고 질긴 나뭇가지, 건들면 툭 부러지고 벗겨지는 고목 껍데기, 자연의 순리 역시 마찬가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렇게 살고 또 살다 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 것이다.

어릴 땐 눈이 너무 좋아 먼 곳이나 가까운 것 모두 뚜렷이 잘 보였다. 안경 쓴 친구들이 지적으로 보이고 왠지 분위기 있어 보여 부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출산 후 몸조리 할 때 책을 읽고 있으면 친정 엄마는 "눈 나빠지면 늙어서 눈 못 쓴다"며 책을 뺏으셨다. 그러나 이제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데 최근 눈에 문제가 있어 안과를 갔다. 첨단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아 20여 가지 대대적인 검사를 해 보기는 생애 처음이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속까지 확인 후 이상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단순 백내장인 줄 알았는데 망막에 문제가 있어 노안수술을 했다.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세월 막을 수 없듯 사람의 생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존재의 이유만으로 온 몸으로 사랑 받으며 자라는 어린 아기가 꿈을 꾸며 희망을 키우며 성장한다. 그리고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 찬 청춘은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라곤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뜨거운 연애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면허증도 없는 초보 부모가 된다. 자식 뒷바라지 하는 동안 시나브로 늙고 병들어 제 몸 다 내어줄지라도 위로부터 받은 사랑 기꺼이 내어준다. 눈물고개 고생고개 지나 온 힘든 시간은 어느새 머리위에 흰 서리가 내렸다. 자식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몫 인양, 텅 빈 하늘만 남은 듯 싶다. 마음 한구석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다 주고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을 어찌하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아낌없이 주는 사랑인 것을.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꽃처럼 고왔던 얼굴에 어느덧 인생의 가을비가 내린다. 오래 썼다. 오래 되었다. 집안 만 인테이어 리모델링 할 것이 아니라 내 몸 사용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 듯싶다. 낡고 오래 된 것들은 고치고 다듬으면서 때 빼고 광내며 건강하게 살 일이다. 고생 많았다 다독여주며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고 막힘없이 오늘을 사는 젊은 청춘으로 살아야겠다. 우리는 그저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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