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민 충북법무사회장

메두사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처녀의 신 아테나의 저주에 의해 머리카락은 뱀으로, 그녀의 눈을 본 사람은 돌이 되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포세이돈이 메두사를 신전에서 강간하자 오히려 아테나는 신성모독을 이유로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이후 메두사는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에게 죽음을 당하며, 그 머리는 아테나의 방패에 달리게 된다. 고대 여성이 강간당한 뒤에 겪는 과정을 신화는 독특한 방법으로 설명한다.

이후 '강간 피해자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는 문명 속 그림, 조각, 건축의 소재가 됐다. 마치 강간의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예술가 루치아노 가르바티(Luciano Garbati)의 작품 속에서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들고 당당히 서 있다. 강간의 피해자가 더 이상 숨어 살 수 없다는 선언으로 문명은 드디어 신화 속 고정관념을 깬다.

신화 속에서 피해자 메두사는 강간, 사회적 매장, 살인, 가해자 아테나의 변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치욕을 순차로 겪게 된다. 이런 황당함이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된 사건이 있다. 오창 여중생 성폭력·학대와 자살 사건이다.

오창 여중생은 왜 자살에 이르렀을까? 당장 드러나는 것이 우리 법이 아동 학대를 발견해도 피해자를 교육청이 케어(돌봄) 할 수 있게 통지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피해 아동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명분이면 긴급 분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렇게 피해 아동은 홀로 소명하고 증명하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고 그 끝은 자살이었다.

계부의 성폭력과 학대를 청주시청은 알았으나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 학교 위(we)클래스도 알았으나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아서, 경찰은 영장을 청구하였으나 3번 기각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각각의 방패(항변)을 든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미 파괴된 상태의 아동이었고,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아야 했다.

변명이라는 방패를 들은 아테나가 피해자를 괴물로 만든 저주를 했다는 신화 속 메시지는 의미있다. 현실에서도 변명을 하는 자가 많을수록 피해자는 사회적 매장을 당하거나 잊힌다. 우리는 돌이 되는 한이 있어도 변명이 아닌 비참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아동학대 사건에 '보호관' 신설을, 피해 아동의 발견시 교육청에 의무적 통지를, 피해자 분리가 제때 이뤄지게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다.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br>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이미 두 아이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다. 지역 사회는 깊은 참회를 통해 야만의 시간을 끝내고 문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들고 당당하게 서 있는 메두사의 모습을 기원하며 더 이상 성폭력 피해 아동이 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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